안내중 30년간 변함없이 자리 지킨 인포상회
안내중 30년간 변함없이 자리 지킨 인포상회
인포리 김복례(81)씨 인터뷰
  • 오정빈 hub@okinews.com
  • 승인 2020.02.05 10:5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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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내중학교 맞은편 인포상회를 운영하는 김복례(82)씨. 4일 오후 4시 촬영.

(읍면소식-안내면) 안내면 인포리 안내중학교 맞은편 김복례(81)씨가 운영하는 인포상회가 있다. 예전에는 근방에 가게가 일곱 곳 생겼을 정도로 장사가 잘 됐는데 이제는 인포상회가 유일하게 남은 상회가 됐다. 하루 담배 두 갑을 팔면 제법 장사가 된 날인, 간혹 오며가며 주민들이 문 한 번 열고 들어와 인사를 하고 간다. 낡고 거뭇해진 석유난로 위 주전자나 먹고 남은 참치캔이 조용히 달아오르는, 작은 상회다.

김복례씨는 본래 보은군 회북면(회) 거쿠리 태생(당시)이다. 안내면 인포리 관골로 시집 와서. 콩· 팥·들깨니, 논에는 모도 조금 심었는데, 할아버지가 51세 나이에 숨이 차서 더 일을 못하겠다고 말해 지금 인포리 화인 자리에 가게를 차렸다.

"그 양반을 처음 만났을 때 그 양반이 22살, 내가 21살이었어. 처음 만났을 때가 잊혀지지가 않아. 7월 여름이었는데 맥고자를 쓰고 나온 거야. 일할 때나 쓰고 다니는 맥고자를, 손목까지 내려오는 누르스름한 광목을 와이샤쓰로 입고. 선 보러 나온 사람이 누가 그렇게 입고 나와? 보자마자 정이 뚝 떨어졌지(웃음)!. 그런데 그때는 집안 어른들이 서로 마음에 들면 결혼하는 거였으니까, 약혼하고 그 사람 군인 다녀와서 22살에 결혼했어."

처음 가게를 차렸을 때는 근방에 가게가 일곱 곳이 있었을 정도로 장사가 잘됐다. 그런데 그 사람들은 이제 다 떠나고 노인만 남아 동네가 많이 비었다. 안내중학교도 학생이 몇백명 돼서 점심시간마다 컵라면이니 과자니 엄청 사갔는데, 이제는 학생수를 열손가락으로 셀 수 있다.

살아 있었으면 82세였을 남편은 71세에 세상을 떠났다. 기침을 그렇게 하더니 폐병이었다. 두 딸과 아들 하나는 각각 청주, 대전, 읍에 나가 제 일을 하고 있다. 요새 남은 즐거움은 일주일에 한 번 마을회관에 운동 가르쳐주러 오는 선생을 보는 일이다. 매주 월요일 두 시부터 세 시까지 오는데 운동을 가르쳐주는데 그 시간만큼은 가게 문도 닫는다.

"(팔을 위로 쭉 펴며)이렇게. 다리도 이렇게 두드리고. 몸 좋아지라고 두드리고 하지. 어느날은 봉숭아 물도 들여요. 그림 그릴 때도 있고. 뭐 맨들 때도 있고 그래. 다음주에도 뭘 만든다대. 치매에 좋나봐. 요새는 내 몸이 내 마음대로 움직여지지 않는데 그렇게 한 번 운동하고 나면 몸이 좀 풀리는 거 같아. 좋아."

또 일주일에 한 번 상회 바로 맞은편에 있는 교회를 나가는 재미도 제법 쏠쏠하다. 전에는 성경책을 한 번 다 읽고 또 손으로 쓰기도 했는데, 요새는 눈이 침침하고 가만 자리 잡고 앉아 글씨 쓰기가 어려워 교회에 나가 한시간 말씀 잘 듣고 나온다. 언제 들어도 좋은 말씀이다.

평소에는 텔레비전을 보며 시간을 보낸다. 사람들은 날 따뜻한 봄이 되면 상회에 좀 찾아올 테다. '그때까지 이 겨울을 어떻게 잘 보내야지' 생각한다. 

안내중학교 맞은편 인포상회를 운영하는 김복례(82)씨. 4일 오후 4시 촬영.

 

안내중학교 맞은편 인포상회를 운영하는 김복례(82)씨. 4일 오후 4시 촬영.

 

 

 

안내중학교 맞은편 인포상회를 운영하는 김복례(82)씨. 4일 오후 4시 촬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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