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후 왜적이 평야성을 함락시키자 방어사 김웅서 부대로 자진해 들어가 평양성을 탈환하는데 많은 공을 세운 것으로 기록에 전하고 있다. 이같은 공이 인정되어 난이 끝난 후 류 복 공은 선무 원종훈(宣武原從勳) 3등 공신으로 통정대부 첨지중추부사에 올랐다.
임진왜란 후 조정에서는 난을 극복하는데 공을 세운 1만2천명의 공신을 대상으로 공신록(功臣錄)을 작성했는데 이 공신록에 류 공의 이름이 올라 있는 것을 류지창(60·대전 거주 류 복 공의 12대손)씨가 발견하여 알려지게 된 것.
문화류씨 종친회 총무로 일하고 있는 류지창씨는 지난 87년부터 임진왜란 당시 공신들의 후예문중들이 임진란을 새롭게 조명하고 널리 알려지지 않은 이름없는 선조들의 넋을 위로하기 위해 조직한 임란공신 숭모회(회장 안병훈)의 도움으로 13대조의 공적사실을 알게 되었다. 현재 충남 보령군 웅천면 황교리에는 이들 임진란 당시 공신의 위패가 모셔져 있는 '임란 일마누국공신제단소'가 위치, 지난해 11월11일에는 임진왜란 4백주년을 맞아 '임란공신 추모대제'를 지낸 바 있다.
류지창씨의 아버지인 류영래(77·대정초교 학구단위 노인회장)씨는 "일생일대의 소원이 풀렸다"며 "세상에 이미 이름이 드러난 분들은 서원등에 배향되어 추모를 받고 있지만 그대로 역사 속에 묻혀 있는 훨씬 많은 사람들의 공적이 밝혀져 올바로 평가될 수 있었으면 한다"고 말했다.
류 회장은 또 "사실 중봉선생이 이곳 옥천에서 의병을 모집하여 왜적과 대향했지만 7백명의 의사 중 이름이 밝혀진 분은 2백여명에 불과하다"며 "울리 고장에서도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친 분들이 많은 만큼 하루빨리 공적이 밝혀졌으면 한다"고 덧붙였다.
이러한 류 복 공의 임란공적과 함께 류 회장의 12대 조인 류홍수 공도 중봉선생과 함께 금산전투에서 장렬히 순국한 7백 의사 중의 한명으로 밝혀져 대촌리 문화 류씨 문중의 자긍심을 높여주고 있다. 한편 류 회장은 국난을 극복하는데 힘을 쏟은 많은 공신들의 공적이 밝혀지길 기대하는 마음에서 많은 사람들이 임란공신승모회의 문을 두드릴 것을 권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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