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 구하려다 함께 죽은 정재수군
아버지 구하려다 함께 죽은 정재수군
우리고장 전설 (27)
  • 옥천신문 webmaster@okinews.com
  • 승인 1994.01.01 11:06
  • 호수 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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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산면 법화리.일명 버구실에서 보은군 마로면으로 이어지는 험준한 고개가 있다. 이 고개가 ’효자고개’이고 고개 정상에는 「정재수 효자비」가 있다.정재수가 경북 상주군 화서면 사산국민학교 2학년때 일이다.고향은 청산면 법화리이고 그의 조부모와 큰아버지가 살고 있었으며, 재수 어린이는 아버지를 따라서 상주군 화시면에 살고 있었다.평소 어린이답지 않게 과묵하고 침착했으며. 예의 바른 어린이였다.1974년 1월22일은 설을 하루 앞둔 섣달 그음이었다.며칠 전부터 내리기 시작한 눈은 연일 계속 내려 쌓였고, 폭설주의보가 내려 혹한이었다.이렇게 춥고, 눈이 많이 내려 쌓이는 날, 정재수 어린이는 아버지를 따라서 고향인 청산면 법화리 할아버지댁에 설을 세기 위하여 떠났다.상주군 회북면에서 옥천군 청산면을 가자면 보은군 마로면을 거쳐서 효자고개를 넘어야만 하는데 길이 험준한 산고개 길이라서 걸어서 가야만 했다.정개수 부자는 눈이 무릎까지 빠지는 험한 산길을 혹독한 강추위와 싸워 가면서 걷고 있었다.이윽고 화북면을 거쳐서 아로면에 왔을 때 눈보라는 더욱 기승을 부려 더이상 갈 수가 없어서 이들 부자는 어느 술집에 들려 잠시 쉬어가기로 했다.술집에서 정씨는 꽤 많은 술을 마셨고, 술에 많이 취한 정씨는 술기운에 추위도 모르고 오직 내일이 설이니 오늘밤에 꼭 고개를 넘어서 고향에 가야겠다는 생각만 했다.

여러사람의 만류도 뿌리치고 혹한과 눈보라 속을 뚫고 정재수 부자는 청산을 향하여 길을 떠나고 말았다. 길을 잃어 버리기를 몇 번, 눈이 무릎 위까지 빠지는 산길을 술 취한 아버지를 모시고 밤이 꽤 깊어서야 고개마루까지 오게 되었다.

그때 정씨는 “이제 더 못 가겠다”하더니 푹 쓰러지고 마는게 아닌가! 정재수 어린이는 “아버지! 아버지!” 부르면서 아버지를 일으켜 세우려 했지만 꼬마의 힘으로는 어쩔 도리가 없었다. 정재수 어린이는 술 취해 쓰러진 아버지를 위하여 자진의 옷을 벗어 아버지를 덮어 주고. 극진히 보살폈지만 그 혹독한 추위 앞에서 그들은 동사하고 말았다.이튿날, 동네 사람들에게 발견된 이들 부자의 시체는 차마 눈뜨고는 못 볼 감격적인 장면이었다.어린 개수군이 아버지를 죽지 않게 하려고 애쓰다 자기도 죽게 된 그 상태가 너무도 역력했기 때문이다.그 후 이 어린 정개수 어린이의 효행을 길이 교훈 삼고자 그리고 이들의 넋을 위로하기 위하여 산마루 위에 「정재수 효자비」를 학생들의 정성으로 세워서 지금도 전하며 그 후 이 고개를 ‘효자고개’라 부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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