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폭에 정다운 고향의 모습을 담고 싶습니다"
[내고향 옥천] 청성면 고당리 월곶이 출신 한남대 미대 서양학과 김동창 교수
“그림 안에는 세상의 모든 것이 다 들어있습니다. 크게는 자연이 있고, 사람이 있고, 그 사람 표정, 몸짓 하나 하나에는 기쁨이나 슬픔 같은 인간의 모든 정서가 담겨 있습니다.”(작가의 노트 중에서)
그림 안에 세상의 모든 것을 담기까지, 아니 그림에 자신의 생을 온전히 담아내기까지 참 많은 시간이 걸렸다. 중학교 때부터 시작한 미술공부는 축구를 하다가 다리를 심하게 다치면서 맥이 끊겼고, 그로 인해 많은 방황 끝에 에둘러 닿아야 했다.
그는 옥천중 3학년때 가출을 감행했다. 병원에 입원해서 한 학기를 쉬는 관계로 제대로 졸업 하지 못했고, 그로 인한 스트레스 등으로 그는 경기도 고양으로 무심코 떠났다. 작은 아버지의 선생님이셨던 송자용씨의 댁에 의탁해 딸기 농사도 짓고, 텔레비전 만드는 공장, 냉동기 만드는 공장, 심지어는 청계천 술집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는 등 어릴 때부터 숱한 고생길을 자처한 셈이다.
많은 방황 끝에 그는 다시 학교로 가야겠다는 생각을 품었고, 18살에 옥천실고에 입학한다. 당시는 미술로 먹고 살아야겠다는 생각도 못했을 뿐더러 미술대학이 따로 있는지 조차 몰랐다.
중학교 때 윤남한 선생님, 고등학교 때 노재권 선생님이 은인이라고 말한다. 고등학교 다니면서 대전의 미술학원에서 청소를 하며 그림을 배웠고, 특차로 숭전대(현 한남대)미술교육과에 입학하는 영광을 안았다. 그는 그림과 그렇게 만났다. 그리고 그의 붓에 많은 것을 담아내기 시작했다. 그것은 오랜 방황끝의 달콤한 부산물이었고, 그의 인생을 위로하고 격려해주는 힘찬 붓질이었다.
고향, 오지 중의 오지지만 그리워...
“화가의 눈으로 세상을 봄으로써 표현된 모든 것에 보여지는 그림 아래로는 또한 화가와 대상 사이의 정이 흐르고 있습니다. 늘 바쁘게 살아가는 도시 생활의 현실속에서 인간의 심연을 들여다 보게 되면 조금씩 껴안고 살아가는 바스라진 아픔이 있고, 그래서 다른 사람들에게 한 발짝 더 다가가고 싶은 따뜻한 마음들이 있습니다.”
김동창(50) 화백은 ‘정이 있는 풍경’을 꿈꿉니다. 삼양초(19회)와 청마초를 번갈아 다녔던 그는 고향의 풍경을 잊지 못합니다. 오지중의 오지, 강원도 두메산골도 그와 같지 않다면서 자신의 고향을 표현했지만, 그는 지금 그 곳에서 뛰놀던 기억들만큼은 그 무엇과도 바꿀수 없다고 말합니다. 가난한 고학생으로 농사를 짓던 농가의 장남으로 그는 학생들을 밤낮으로 가르치며 학비를 버는 등 어렵게 공부했습니다. 고당리에 사시는 아버지 김무홍(71)씨와 어머니 황순애(72)씨에게 감사함을 표합니다.
“서로에게 마음을 열고 서로가 삶의 공간을 나누며 또 그 공간을 공유하면서 자연이 있고 그 안에 따뜻한 정이 그리움을 타고 흐르길 바랍니다.” (작가의 노트 중에서)
고향에서 전시회 하고 싶어
“내 고향 옥천이 잘 됐으면 좋겠습니다. ‘청옥회’와 ‘춘설회’ 등의 고향모임을 가지면서 친구들을 만납니다. 동아서적의 천세헌, 전순표, 오천균 변호사 등 옛 친구들과 이야기를 나눕니다. 옥천이 자연과 사람이 잘 어우러진 문화의 고장으로 거듭나길 바란다고. 하동철 작가, 정영목, 유희영 교수 등 옥천 출신 화가들과 같이 옥천에서 전시회를 하고 싶습니다. 고향주민들과 대화하며 고향을 담아내고 싶습니다. 조그만 공간에서 고향 후배들에게 그림도 가르쳐 주고 많은 것을 이야기 해주고 싶습니다. 고향이 손짓하면 즐거운 맘으로 갈 것입니다.”
“일상적인 삶의 대상들이 보여주는 울림에 귀를 기울이고 끊임없이 이끌어 내는 새로운 작품세계를 만들어가고 싶습니다. 함께하는 시간, 함께하는 공간 함께하는 사람들이 있음을 늘 고맙게 생각합니다.” (작가의 노트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