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과 더불어 사는 삶이야말로 농사의 의미

귀재 마을에 3년 째 자리 잡은 주정화 변종만 부부 60여 가지가 넘는 농작물들을 친환경으로 키워 소농의 삶으로 자급자족의 과정까지 도달할 수 있었으면

2021-06-16     김기연 기자

청성면 장연리에서 언덕 골짜기를 거쳐 저수지를 거슬러 올라가다 보면 울창한 수풀 사이로 귀재 마을이 있다.

서울에서의 직장 생활을 정리하고 지리산 산청에서의 귀농생활을 거쳐 청성 장연리에 자리 잡은 지 3 년차. 잔뜩 땀 흘리며 한창 푸르게 자라나고 있는 작물들과 흙을 만지고 음미하는 것이 너무나 행복하다는 주정화(59) 변종만(66)씨를 만났다.

“농사일을 더 일찍 알았더라면 직장 일은 안 했을 겁니다” 사실 두 부부는 농사에 대해 아무런 지식이 없었다. 변종만씨는 기업은행 지점장으로, 주정화씨는 서울신용보증재단에서 근무했었다. 안정적인 생활이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서울에서의 삶은 치열하고 고단했다. 그러다 평소 책을 좋아하던 변종만씨가 장일순 선생과 윤구병 선생의 책을 읽고 농사에 푹 빠진 것이 귀농생활의 시발점이었다. 그리고 귀농을 통해 농사에 매력에 점점 더 빠져들었다. 몸을 움직여 내가 먹는 것을 내 손으로 만든다는 점에서 자존감이 높아졌다는 변종만씨. 이러한 농사의 매력에 빠진 건 주정화씨도 마찬가지였다. 처음에는 아무것도 모르고 시작했지만 서툴어도 다양한 작물을 가꾸다 보니 뿌리내리고 있는 귀재 마을도 삶의 터전으로는 안성맞춤이었다. 저수지 너머 한적하고 안락한 마을이고, 집 주변으로 물줄기가 흐르기 때문이다. 주정화씨와 변종만씨는 더욱 빠져들었다.

부부는 귀농하기 전 귀농운동 본부에서 주관하는 생태학교와 귀농학교에서 약 1년간 교육을 받으며 점차 농사 의미에 대해 이해 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기본적으로 두 교육과정에서 중요시한 것은 제초제와 농약을 사용하지 않는 것이었다. 그리고 두 부부도 자연과 함께 하는 친환경농업을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제초제와 농약의 사용과 땅에 비닐을 치지 않는 것은 기본. 풀도 시원하게 뽑지 않는다. 풀과 함께 살고 풀이 자원이라는 변종만씨의 굳센 철학이 있었기 때문이다. 주정화씨도 풀과 함께하는 삶이 쉽지는 않았지만, 지금은 함께 살아가기 위해 노력 중이었다. 

“풀은 자원입니다. 풀뿌리가 땅에 박혀야 모든 영양분, 산소 공급, 미생물 공급이 이루어지니까요. 다만, 길게 자란 풀을 잘라 퇴비로 쓰고 있습니다. 이렇게 3년 정도하다 보니 실제로 땅이 살고 지렁이와 땅강아지가 수두룩합니다. 땅의 냄새도 달라졌습니다. 흙을 움켜쥐고 씹어먹고 싶다는 생각까지 들게 합니다.”

재배 예정인 작물들까지 포함 하면, 두 부부가 지배하고 있는 작물은 60가지가 넘는다. 물론 전부 친환경 작물이다. 약 1천 평의 복조 대추와 400평가량의 앉은뱅이 밀, 집 뒤편에 있는 2평가량의 토종 박하와 야생 박하, 그 외에 다른 작물들도 700평가량이다. 그뿐만이 아니다. 두 부부는 귀농 귀촌을 생각하는 이들에게 도움을 주고자 전지, 순지르기 등에 관련된 유튜브(유튜브 ‘주주농장’)를 운영하고 있다. 주정화씨는 지역 활동에도 몸담고 있다. 청산 복지관에서 발달 장애 아동들을 위한 봉사활동을 3년째 참여하고 있다. 발달 장애 아동들이 치유를 얻고 언젠가 스스로 자립을 했으면 하는 바람에서 1주일에 한 번은 꼭 봉사활동에 참여를 하고 있다는 것이다. 몸이 열 개라도 모자랄 정도다. 이러한 와중에 로컬푸드 직매장이 두 부부와 같은 소농들이 판매를 할 수 있는 판로가 있다는 것이 다행이고. 더불어 유기농 인증을 위한 비용도 군에서 전액 지원하고 있어 상당히 만족스럽다는 두 부부. 그리고 두 부부같은 소농에게 로컬푸드직매장같은 판로가 있어 다행이라고 말했다.

친환경농업은 두 부부에게 많은 것을 느끼게 했다. 소농의 삶과 자연환경, 생명의 가치를 생각하게 된 것이다. 자본주의적 삶과 정반대인 새 시각과 대안. 그것이 바로 친환경농업의 가치라고 힘을 주어 이야기했다. 

“소농의 어려움은 자급입니다. 자급이라는 것은 의식주를 해결할 수 있어야 하고 교육을 받으며 의식주를 해결할 수 있어야 합니다. 소농으로 농사를 짓는 과정에서 자녀들을 교육까지 시킬 수 있는 단계까지가 자급이라고 할 수 있겠죠. 물론 어려운 과제입니다.”

두 부부가 농사를 통해 얻고자 하는 것은 자급자족과 소농으로써의 삶이다. 소농의 삶이 소중한 미래의 표상이 되고, 젊은 사람들에게도 비전이 되면 좋겠다는 뜻이다. 그리고 작은 농사를 짓더라도 충분히 자급이 가능한 정책이 펼쳐지기를 희망했다. 기본소득과 소농 직불금 등 젊은 사람들이 농업에 대해 긍정적이고 함께 참여할 수 있는 여러 정책들이 필요하다고 두 부부는 이야기했다.

여러 작물들을 가꾸며 내 몸을 움직이는 삶, 그것이 농사를 짓는 의미라고 부부는 이야기한다. 일도 시간에 쫓겨서 급하게 하지 않는다. 많이 쉬어가며 한다. 어떤 날에는 일부러 게으르게 일 하기도 한다. 목표 달성보다도 자연과 함께 어울리며 살아가는 것이 농사를 짓는 이유이기 때문이다. 식물이 싹을 틔고 올라올 때의 감동, 파 뿌리에서 나는 향, 이렇게 소소한 일상들을 경험하는 게 농사의 의미라고 변종만씨는 말했다.

“농사를 지으면서 생각합니다. 기쁨과 평화는 훌륭한 말과 생각에서 오기보다는, 함께 땀 흘리고 부대끼는 데서 찾아온다고요. 파 뿌리에 코를 박고 얻을 수 있는 느낌, 흙 일을 하다가 갑자기 불어오는 바람을 느낄 때 그건 도저히 표현할 수 있는 방법이 없죠. 앞으로도 자연과 함께 하는 소농의 삶이 많은 사람들에게 전해졌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