냉해에도 복숭아는 ‘몽실몽실’ 큰다는 희망
서대1리에서 복숭아 농사하는 김흥식·천도순 부부 당도 높고 맛 좋은 다양한 복숭아 출하 위해 땀 흘려 20여년 넘게 복숭아 농사···올해 냉해로 골머리 앓아
화창한 날씨를 자랑하던 3일 오전 11시. 서대1리 한 농가에 복숭아 예비적과 작업이 한창이다. 이날은 모처럼 하늘이 돕는 날씨였다. 약 4천500평 규모에 복숭아나무들이 줄지어 있던 농장에 들어서자 청국장마냥 구수한 뽕짝 메들리가 들려온다. 시기상 잘 익은 복숭아를 만날 순 없었으나 손톱 크기만큼 자란 초록색 아기 복숭아가 나뭇가지에 매달려 기지개를 켜고 있었다. 이제 바쁜 시기가 찾아왔다는 표식이다. 곧 있으면 사람들 불러 솎기 작업이 진행된다.
몽실몽실복숭아농장. 서대리를 지나가다 보면 큼지막한 나무 입간판에 특이한 농장 이름을 만날 수 있다. 몽실몽실, 한 번 들으면 까먹기 어려운 이름이다. 주변에서 이름 예쁘다는 말 꽤 들었단다. 몇 년 전 농기센터에서 열린 강소농 마케팅 교육 때 농장 이름을 짓는 시간이 있었다. 그전에는 ‘누구네 농장’이라 불렸을 뿐 이름도 뭣도 없었다. 이름 지으려고 인터넷에 키워드를 검색하는데 향수니 옥천이니 다른 농장이 다 써서 없었다. 뭐로 지을까.
어느 날 창가에서 하늘을 바라보는데 구름이 몽실몽실 떠 있더란다. 이거 괜찮겠다. 실은 몽실몽실 하면 사람들이 개를 먼저 떠오른다. 과일은 연관성이 그리 크지 않았다. 마케팅 교육에서 만난 한 교수는 ‘이건 안 된다’ 하고, 어떤 분은 ‘괜찮다’ ‘이거로 하라’는 반응이다. 그냥 바로 인터넷 등록을 해버렸다. 그때가 2013년. 인터넷에 몽실몽실복숭아농장 검색하면 딱 나온다. 20여년 넘게 서대리에서 복숭아 농사를 하는 김흥식(62) 천도순(62) 부부 이야기다.
■ ‘꽃이 일찍 핀 것들은 다 날라갔어요’
이들 부부는 조생종부터 중생종, 만생종까지 다양한 품종의 복숭아를 매해 출하하는 가운데 올해도 복숭아 농사에 매진하고 있다. 읍 서대1리 이장인 김흥식 씨는 ‘옥천 복숭아’를 매개로 주변 농가들의 상황을 파악하고 소통한다. 지난해 2월 복숭아공선출하회 회장을 맡아 내년 초까지 임기를 지낼 예정인 김 씨는 옥천복숭아사랑연구회 또한 소속돼 있다. 이원, 안내, 안남, 청산 등 옥천에 복숭아 농사를 하는 농가들과 자주 연락하며 어려운 점을 서로 나눈다고.
“오늘처럼 날씨가 좋아야 하는데, 올해는 일기가 너무 잘못 했어요.”
최근 들어 복숭아 농가들과 소통하는 네이버 밴드에서 ‘난리가 났다’고 한다. 실은 5월이 되면 솎기 작업을 바로 들어가야 하지만, 이들 부부가 그 시기를 조금 늦춘 것도 올해 복숭아 농가들이 겪는 고충과 맞닿은 지점이었다. 20여년 넘게 복숭아 농사를 해도 어느 해도 쉽게 넘어간 적이 없다지만 올해는 유독 심했다고. 이들 부부는 복숭아 수확량이 예년보다 약 20% 줄어들 것으로 내다봤다. 바로 ‘냉해’ 때문이다.
읍내는 그나마 나은 상황이란다. 공기가 더 차가운 안내나 이원 같은 면 단위는 냉해 피해가 더 심한 상황이라는 후문이다. 평년 기온과 달리 4월 며칠은 나흘 가까이 기온이 확 내려간 적이 있었다. 그때 꽃이 일찍 핀 복숭아나무는 냉해를 입어 얼어버린 것. 내일모레 비가 온다는 소식이 있어도 이들 부부는 걱정부터 앞선다. 낮과 밤의 온도 차가 크면 과일은 쉽게 성장할 수 없기 때문. 올해와 같은 상황은 지금으로부터 10년 전인 2013년 그때와 비슷하다.
“그래도 옥천은 판로가 잘 돼 있어서 좋아요. 어떤 지역은요. 판로까지 가려면 차 끌고 멀리 가야 해서 너무 불편하대요. 옥천은 얼마나 좋아요. 우리가 농사만 잘 지으면 돼요.”
■ ‘농민 모두 행복하게 농사짓는 그날을 꿈꾸며’
현재 옥천군 복숭아연합회에 가입된 회원은 약 900세대, 옥천군 복숭아공선회에 가입된 회원은 107명이다. 이들 부부는 오는 6월 말부터 9월 초까지 수확한 복숭아를 농산물산지유통센터(APC)에 출하할 예정이다. 농장에서 선별만 잘 이뤄지면 공선회에서 포장해주고, 도매시장도 가까우니 판매 걱정은 없다고. 다만, 올해 냉해로 전체적인 물량이 줄어들 가능성이 높아 안심할 수 없는 상황이다. 이들 부부는 옥천 복숭아 브랜드화, 농가 조직화에 힘쓰며 복숭아 수확량의 70~80%를 APC에 보내고 나머지는 택배 대행판매를 한다.
“일요일은 비가 오면 안 되는데. 우리 아들내미 피로연 하거든요, 천안 아가씨랑. 그날은 안 돼! 날씨가 좋아야 혀.”
천도순 씨는 매주 수요일 오후 2시 농기센터에서 진행하는 복숭아대학 21기 교육과정을 들으러 간다. 매해 진행되는 복숭아 교육이지만 기상 상황이나 복숭아 트렌드가 해마다 다르기 때문에 귀 기울여 듣는다고. 예전에는 백도 같은 조금 무른 복숭아를 찾았다면 지금은 단단하면서 당도 높은 복숭아를 찾는 추세란다. 또한, 한 번 씻고 껍질을 깎지 않은 채 바로 먹을 수 있는 일명 ‘뺀질이 복숭아’를 젊은 사람들이 선호한다고. 20여년 넘게 시골에서 복숭아 농사를 하는 이들 부부는 블로그에 일상 글을 올리며 시대 흐름에 발맞춰 따라가고 있었다.
복숭아대학 5기를 수료한 김흥식 씨는 다음 날 청산노인복지관에 간다고 한다. 농사로 바쁜 와중이지만 ‘옥천 달봉이 품바교실’에 참여해 할아버지, 할머니들과 즐거운 시간을 보낼 거라고. 그는 달봉이 품바와 같이 이웃 간 소통을 바탕으로 다양한 지역 활동을 이어간다.
이달부터는 10~20년 경력의 이원 어머니들을 데리고 솎기작업에 들어간다는 김흥식 천도순 부부. 올해는 나무를 새로 심어 품종 갱신을 목표로 잡았다.
“9일부터는 이원 아주머니들을 데리고 작업 일정을 배치했어요. 봉다리도 잘 싸주고. 아주 잘하셔요. 기술자들이에요. 이제 5월에 솎기가 싹 끝나면 복숭아 농사의 큰일은 거의 끝나는 거죠. 갈수록 농사하는 여건이나 환경은 어려운 거 같아요. 그래도 올해도 이겨내야지 않겠어요. 저희뿐만 아니라 우리 농민들 모두가 행복하게 농사지을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