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옛이야기 지줄대는 실개천

2000-05-20     이용원 기자
13일 저녁 7시, 오월이라 그런지 저녁을 먹고 나올 시간이었지만 정지용 생가 주변은 아직도 밝다. 생가 주변에서 들리는 생기 넘치는 웃음소리와 풍물소리 등에 주민들은 모두 대문밖에 나와 생가를 응시하고 있다. 잠시후 민예총 풍물패 '한마당 한소리'가 지용생가 마당에 자리를 잡고 앉아 흥겨운 풍물소리로 '옛이야기 지줄대는 실개천'의 시작을 알린다.

이어 정성진(34·옥천읍 문정리)씨의 클래식기타 연주 사이로 정지용의 `오월 소식'이 장문석 시인의 목소리를 빌려 파고든다. 시낭송, 피아노 연주, 노래, 지용 관련 슬라이드 상영, 춤, 그림, 색소폰 연주 등 다양한 공연이 허전했던 지용생가를 가득 채웠고, 삭막한 실개천 옆에서는 아름다운 얼음 조각 공연도 펼쳐졌다.

어둠이 깔리고 흥이 무르익자 대문밖에 어색하게 서있던 주민들은 자연스럽게 생가 주변으로 몰려든다. 접해보지 못했던 생소한 공연 모습을 웃음과 박수로 지켜보는 주민들의 모습은 그냥 즐겁다. 화려한 조명대신 무대를 밝혀준 문명의 이기인 백열등조차 검은 밤하늘과 어울려 지용의 기억 속에 남아있는 `향수'의 고향 정경처럼 정겹게 느껴졌다.

민예총 옥천지부(지부장 신동인)에서 주관한 지용제 마지막 행사는 이렇게 지용의 어린 시절이 담겨있는 생가의 전등불 아래서 열렸다. 이번 생가행사에서 펼쳐진 '옛이야기 지줄대는 실개천'은 몇가지 면에서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지역 문화단체에서 지용제의 한 부분을 맡아 직접 기획 연출한 행사라는 것과 지용 생가에서 열리는 기념 행사다운 첫 번째 행사라는 것. 또 다양한 지역 예술인들과 주민들이 참여해 함께 만들어 낸 행사라는 것 등이다.

생가 행사를 지켜본 한 주민은 "운영과 진행에 있어서 미숙한 부분이 많이 드러나는 것도 사실이지만 지역의 문화, 예술 행사가 나가야 할 방향을 제시해 주는 훌륭한 행사"라고 평했다. 또 "더 많은 외지인들에게 옥천의 문화, 예술을 보여주지 못한 것이 아쉽다"며 "앞으로 행사시간 조정과 예산의 지원 등을 통해 지용제를 채우는 행사들 중 중요 행사로 부각시킬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공간도 협소해 많은 사람들이 서서 지켜보아야 했지만 "시골 마을 잔치처럼 왁자지껄 사람들이 모여 함께 행사를 치르는 모습이 정겹고 '향수'의 이미지와도 잘 어울린다"는 대전에서 온 한 관람객의 평가대로 화려한 조명도 음질 좋은 앰프시설도 없었지만 주체와 객체의 구분이 존재하지 않는 사람냄새 가득한 공연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