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성면이 현재와 같은 하나의 행정구역으로 묶인 때는 1929년 일제 강점기이다. 1929년 이전까지만 해도 청성면은 오구니재를 중심으로 화성리를 중심으로 산 청남면으로 나뉘어졌었다.
옥천읍에서 청산면을 가자면 자연적으로 가로막는 오구니재를 앞두고 왼쪽의 긴골짜기를 따라 형성된 마을이 장연리(長連里)이다. 장연리란 골짜기가 한없이 길게 이어졌다 해서 붙여진 지명인 바 본래는 '장명'(獐鳴)과 '귀재'(龜峴(구현)에서 변천)란 두 개의 자연마을로 불려졌다.
장명이란 골짜기가 깊어서 노루들이 우는 골이라는 의미에서 붙여진 지명이며 귀재는 본래 마을 앞 개천에 거북이 모양으로 생긴 바위 두 개가 있다 하여 붙여진 지명이다. 마을에서는 거북바위가 머리를 마을로 향해 있으면 풍년이요, 머리를 반대쪽으로 틀면 흉년이 든다는 말이 전해 내려온다. 아무튼 바위 두 개가 마을 이름을 결정할 정도였으니 주민들에게는 의미가 큰 자연물이라 할 수 있다.
골짜기가 길어서 장연, 또는 장명이란 지명이 생겨났듯이 마을에는 골짜기와 관련된 자연지명이 많다. 전체 53가구 둥 41가구가 모여사는 장명으로 들어가자면 족히 1km는 들어가야 하는데 장명에서 12가구가 남아 있는 귀재까지 가자면 2.5km는 간다. 귀재에서도 2km가 넘도록 올라가야 하는 골짜기가 있다 해서 '오리골(5리골)'이 있다. 19번 국도에서 장연리를 들어서기 시작하면서 오리골이란 골짜기에 다다르기까지만도 대략 6km는 가야 한는 셈이다.
이와는 달리 골짜기가 많다하여 붙여진 지명도 있다. '백골'이 대표적인 예. 산속으로 들어가면서 골짜기가 백개가 넘는다는 곳이다. 본래 주민들은 이 골짜기를 막아 마을 주민들이 유용하게 이용할 수 있는 소류지를 건설해달라는 요구를 한바 있다. 주민들의 요구는 장연리 골짜기를 완전히 막아 화성, 능월구를 통괄하는 장연저수지 축조공사로 확대되었는데 어찌되었든 이 저수지도 골이 깊은 이곳 지형을 이용한 결과였다.
장연리는 아직 우리의 민간 공동체 신앙이 그대로 살아있는 곳 중의 하나다. 화성리를 지나 국도에서 진입하다 보면 장명 입구에 하나, 저수지를 돌아 귀재 입구에 하나 등 각각의 마을 입구에 여느 집 대문을 들어서는 듯이 돌무더기와 가지를 늘어뜨린 나무가 반긴다. 대문 역할을 하는 곳에는 돌이 쌓여져 있고 나무가 이를 지키고 있다.
자연 마을별로 별도의 공동 신상을 간직해오다 최근들어 장명은 없어졌고 귀재는 아직껏 계속해온다. 주요 농산물로부터 성씨에 이르기까지 장명과 귀재는 여러 가지 면에서 별도의 생활권을 형성하다시피 한다. 물론 주민들간의 유대는 좋다. 장명에서는 담배가 주로 재배된다. 지금은 많이 줄었지만 한 가구당 평균 9∼10 단보에 이를 만큼 면적이 많다.
반면 귀재에서는 고추가 특산품이다. 거의 모든 가구가 고추 재배에 참여하고 있는데 올해 6천평 규모의 고추단지로 묶여져 공동 생산 및 출하를 할 수 있는 기틀이 마련되었다. 귀재를 중심으로 한 장연리 고추는 최상품의 고추로 유명하다. 고추는 조금 늦되지만 빻아놓으면 윤이 날 정도로 토질이 잘 맞아 색깔을 만들어 놓았다는 오해를 받은 정도라는게 주민들의 설명이자 자랑.
성씨 구성에 있어서도 장명은 김해김씨가 30호에 이를 만큼 김씨 문중이 많은 한편 귀재에는 강릉유씨가 10호에 달할 만큼 대부분을 이룬다. 강릉유씨가 12대째 살아와 마을 구성은 먼저로 추정되고 있다. 장연리는 지난 88년 장연 저수지 공사가 시작되면서 많은 변화를 겪었다. 공사가 시작된 지 7년이 지나도록 완공되지 못한 가운데 귀재에 이르는 이설도로 개설 및 보상관계로 많은 어려움을 겪기도 했다.
저수지 공사와 관련해 현재 주민들이 겪는 불편은 귀재까지의 이설도로 문제이다. 주민들은 귀재 이설도로의 커브가 심하고 도로폭이 좁아 대형 관광차량의 진입이 어렵다며 불편을 호소하고 있는데 2∼3곳의 커브 지점만 보수할 경우 대형버스의 통행도 가능할 것으로 보고 있는 한편 이설도로 노선 이외에 주민들이 최단거리로 걸어다닐 수 있는 오솔길도 개설해 줄 것을 요구하고 있다.또 하나 성안대평장석에서 토석을 채취하는데 따르는 먼지공해가 심각하다는 주민들의 호소가 극에 달해 있다.
마을 앞 도로에는 물을 뿌리며 통행해 줄 것을 요구사고 있지만 잘 실행이 되지 않는다며 주민들의 목소리를 높인다. 아름드리는 아니지만 굵은 호도나무 수백그루가 마을을 둘러싸고 있는 장연리는 옛부터 '호도꼬지'라고 불릴 정도로 호도의 주산지이기도 하다.
날다람쥐 대책에 주민들이 골몰하고 있는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40여년 전 귀재 마을에 있었던 흑연 광산을 폐광하면서 유출되는 지하수로 인해 마을 아래의 개천이 시뻘겋게 변하고 있는 점은 최근들어 주민들의 가장 큰 고민거리로 등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