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산만세운동 주역 최남석 선생은 왜 ‘20년째’ 추서되지 못할까
청산만세운동 주역 최남석 선생은 왜 ‘20년째’ 추서되지 못할까
수형인명부기록, 청산 및 괴산 호적기록상 이름, 생년월일 달라
국가보훈처 “인우보증서와 증언만으로 동일인 인정 어려워”
  • 민영빈 기자 vvvip@okinews.com
  • 승인 2021.09.10 11:50
  • 호수 16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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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남석. 1992년 청산면사무소 수형인명부에서 그 이름이 시작된다. 옥천신문은 1992년 ‘3.1운동, 그날 청산은 죽지 않았다’ 기사를 시작으로 독립운동가 최남석 선생 이름을 호명해 왔다. 2001년에는 최남석 선생의 딸 최복순씨를 인터뷰 했고, 2003년에는 ‘최남석 지사 독립유공자 안 되나’ 기사를 통해 수형인명부와 호적상 이름이 달라 공적을 인정할 수 없다는 국가보훈처 태도를 비판하기도 했다. 20년이 지난 2021년 최남석 선생은 ‘국가로부터’ 공적을 인정 받았을까. 아니다. 청산만세운동을 주도한 청산면 상예곡리 주민들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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