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쯤 되면 점점 각박해지는 현실을 뒤집는 희망의 증거로 추앙받을 만도 하다. 하지만, 그 밝은 면 이면에는 묘한 힘의 역학관계가 도사리고 있다. 지난주 금요일 한 면사무소에 들렀을 때 면장은 군수의 전화를 받았다. 면장의 얘기를 에둘러 들은 바는 유류보내기 행사에 예상보다 많은 성금이 걷혀 수고했다는 내용의 전화였다.
당시에는 경로당에 기름을 보내는 행사로, ‘자발적인’ 모금행사가 잘 끝났는데 왜 군수가 면장에게 수고로움을 표했는지 잘 납득이 가지 않았다. 하지만, 인근 한 업체에 들렀을 때 비로소 이해가 갔다. 그 업체 사장의 말에 의하면 면장에게 전화가 왔었다는 것이다. 유류보내기운동을 하는데 동참을 하지 않겠느냐고. 좋은 일 하라고 면장이 전화하는데 그게 뭐가 잘못된 것이냐고 말한다면 문제의 초점을 놓치는 것이다.
그냥 지나칠 수도 있고, 면장이 적극적인 자선활동을 했다고 오독할 수도 있는 이 일련의 과정은 악용될 소지가 충분하기 때문이다. 행정기관에서의 권유는 단순한 권유를 넘어선 이미 거부할 수 없는 강제성을 띤다. 이는 관에서 하는 사업이나 행정처분 등에서 자기 업체가 부득이하게 불이익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군청에 가서 한 공무원에게 왜 이렇게 전화를 하고 단체나 기업들에게 독려를 할 수밖에 없는지에 대해 들어봤다. 그 공무원의 말을 들으니 당시 ‘유류보내기운동’은 참으로 절박했다. 옥천군은 다른 시 군에 비해 제일 나중에 일정이 잡혀 있었고, 공교롭게도 다른 시군은 거의 전년대비 목표액을 훨씬 웃돌고 있던 것이다.
공무원은 솔직히 매년 열리는 이 행사가 부담스럽다고 했다. 군수는 전 군민의 30%에 달하는 노인표를 의식하지 않을 수 없고, 전년도의 모금액은 항상 부담을 주는 족쇄로 작용한다는 것이다. 공무원이 보여준 모금자 명단을 보니 거의 태반이 단체나 기업이다. 일반인의 이름은 그나마 신문지상에 자주 오르내리는 알려진 이름들이다. 이를 볼 때 이 행사가 얼마나 자발적으로 이루어졌는지 의심을 품을 수밖에 없는 대목이다.
한 방송사에서 주관하는 모금행사에 군이 왜 이렇게 부담스럽고 안절부절해야 하는 지, 그리고 업체와 단체들이 왜 관의 보이지 않는 압력을 받아가면서까지 모금을 해야 하는지 의문이 간다. 1억원이 넘었고 전년에 비해 23%나 증가했지만, 이런 의문들 때문에 뒷맛이 개운치가 않다.
적게 모이더라도 자발적인 기부행위가 우리 사회에 뿌리내리기를 원한다. 당장 눈앞의 물욕보다는 남을 생각하는 그 과정에 큰 기쁨을 느낄 수 있는 사회가 되길 바란다. 이 행사가 노인들의 겨울을 따뜻하게 해줄 수 있다는 큰 믿음을, 그리고 그 성과를 깎아내리고 싶은 마음은 없다. 그러나 정말 올바른 기부문화를 정착시키기 위한 것인지에 대해 주관 측에서는 다시 한 번 생각해봐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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