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지켜봐야만 하는 건가봐. 농민단체가 무슨 소용이 있나 싶기도 하고, 그렇게 만나서 얘기 좀 하자는 데 그 것도 안되고, 농민단체 활동을 하는 게 과연 잘 하고 있는지..."
최근 적극적으로 농민단체 활동을 했던 한 농민에게서 들은 얘기다. 그 누구보다도 활동에 적극적이었고 자신의 주장에 대한 신념이 강했던 사람이었기에 얘기를 듣는 순간 사실 조금 놀랐다. 더군다나 농민에게 저런 얘기를 듣기 전 또 다른 목소리를 들은 터였다.
"우리도 어려운 농촌과 농민들을 위해서 한다고 하는데 이렇게 쪼이니 요즘 같아서는 정말 일하기 힘들다. 공직생활을 통해 요즘처럼 힘들 때가 없었던 것 같다."
논농업직불제 추가분에 대한 현금 지급 무산과 관련 농정과 관계 공무원들을 취재하는 과정에서 공무원들의 입을 통해 흘러 나온 얘기다. 논리적인 분석을 떠나 `왜 농민과 농업관련 공무원들이 서로에 대해 섭섭함을 느끼고 이리도 힘들어야만 하는 것일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공무원에게 `농촌과 농민이 힘들고 무시당하는 지금의 현실에서 관련 공무원이 힘든 것은 당연한 것 아니냐?'라고 되묻긴 했지만 바윗덩어리 같은 것이 가슴 한 쪽을 꾹 누르는 마음마저 지울 수는 없었다.
최근 농민단체에서 `예산'에 대한 얘기를 거론하다 보니 퇴비지원 예산의 `직불금 전환'으로 초점이 모아지는 모습이지만 이 보다 앞서 제기된 문제는 `효율적인 친환경농업 예산의 편성'이었다. `친환경농업을 위한 토양 개선을 위해 퇴비를 밭과 과수 농가에 지원하겠다'는 명제만 놓고 보았을 때는 아무런 문제가 없겠지만 예산편성 동기에 대해서는 분명 다시 생각해 볼 문제다.
정태경 농정과장은 지난 3일 있었던 쌀 대토론회와 예산 심의과정에서 토양개량과 함께 `지원의 형평성'을 거론했다. 올 초 2억여원의 예산으로 논농사를 짓고 있는 농가에는 지원이 돌아갔지만 밭과 과수농가에는 지원이 돌아가지 않았기 때문에 이번에 예산을 편성했다는 설명이었다.
언뜻 수긍이 가기도 하지만 올 초 2억여원의 예산은 그 편성동기가 쌀값 하락에 따른 수매농가의 쌀값 보전용이었다. 이를 예산을 의결한 의회와의 상의도 없이 모든 벼 생산 농가에 면적을 나눠 퇴비로 지급해 농민단체의 반발을 샀던 경우다. `형평성'이라는 논리아래 본래 편성목적을 잃어버린 것이다. 결국 농민단체의 쌀값지지 요구는 지켜지지 않은 셈이다. 더군다나 선거를 앞두고 `선심성 지출'이라는 비판마저 불러 일으켰다.
예산을 편성하고 집행하는 과정에서 그 수혜 대상자들의 형평성 또한 고려해야 할 조건 중 하나겠지만 그 것이 전부여서는 안 된다. 자칫 `형평성'에 매몰되다가는 예산의 낭비적 지출과 비효율적 지출을 불러올 수 있다. 농민단체의 처음 문제 지적은 여기에서 출발한다. 중·장기적인 친환경 농업의 방향과 실현 방식을 설정하고 그 시기와 목적에 맞는 예산이 편성되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토양 개량이 친환경 농업의 추진을 위해 걸어가야 하는 중요한 과정 중 하나임을 부인할 수는 없겠지만 세부적인 추진계획이 없는 상황에서의 예산편성과 지출은 자칫 `예산의 편성과 지출에 있어서의 효율성'이라는 부분에서는 한계를 가질 수밖에 없다.
이쯤에서 우리 군의 `중·장기적인 친환경농업(혹은 농정일반)의 발전방향과 구체적인 실현 방안'이 있는지를 묻고 싶다. 없다면 더 늦기 전에 청사진을 농민들에게 제시해야 할 것이다. 또 그 과정에서 농민단체에서 2년에 걸쳐 주장하고 있는 `쌀 대책위원회(가칭) 구성'에 대해 이제는 전향적 자세를 보여야 할 것이다.
최근 각 자치단체별로 실효가 있는 자문기구에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는 만큼 현장에 있는 농민과 농협 관계자 등의 얘기를 듣고 정책에 반영할 수 있는 기구로서의 `쌀 대책위원회 구성'에 군은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
이는 정책의 입안과 효과적인 실현을 위해서도 반드시 필요할 것이다. 도에서 도비와 군비를 들여 추진하고 있는 청정농산물단지 조성 과정에서 대상자 선정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이유 중 하나는 사업 자체의 입안 과정에서 농민들이 사업의 주체가 아닌 대상으로 존재했다는 것도 분명 한 원인일 것이다.
농민들이 농정의 대상이 아닌 주체가 될 수 있도록 군과 농민이 함께 노력해야 한다. 그리고 그 속에서 농민과 공무원, 의원, 농협이 서로에 대한 불신과 섭섭함, 답답함이 아닌 기분 좋은 고민을 함께 교류하는 모습을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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