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시시각각 바쁘게 움직였다. 앉아서 거드름만 피는 회장은 아니었다. 아침 7시쯤 출근해서 꽉찬 스케줄에 맞춰 움직이는 의욕적인 CEO였다. 자신의 기업철학도 명쾌했고, 자신에 대한 신뢰와 그 열정이 아직 살아있었다. 환갑이 다 된 나이지만, 그는 젊어보였고, 젊어지고 있었다.
서울에서 안산까지 그를 만나러 가는 동안에도 시간은 여러 번 조정됐지만, 그 바쁜 와중에도 고향사람에겐 기꺼이 시간을 내주는 따뜻함도 잊지는 않았다.
35살 젊은 나이에 인수한 조그만 기업을 굴지의 자동차 부품 기업으로 성장시킨 정구용 회장(60)의 말이 시작됐다. 그는 이미 고향 옥천의 이원농공단지에 8천여 평의 부지를 사서 공장을 세우고 있었다.
정직하고 당당한 기업, 부지런한 기업
연매출 3천5백억에 직원 1천5백여 명을 이끌려면 나름대로의 기업철학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물었다. 그는 이미 준비된 답변을 힘있게 이야기했다. “첫째는 정직해야 합니다. 정직하면 당당할 수 있습니다. 하나 거리낄 것 없이 떳떳해야 자신의 일에 자부심을 가질 수 있습니다.
둘째, 정직함이 밑바탕이라면 그 위에 부지런함이 덧붙여져야 합니다. 저희 회사는 삼성보다 7시 출근 4시 퇴근을 먼저 시작했습니다. 저도 항시 7시까지 출근해 하루 일을 설계합니다.
셋째, 내가 거느리고 있는 직원들이 행복해야 합니다. 결국 직원들이 행복해 해야 내가 행복할 수 있습니다. 언젠가 택시를 탔는데, 운전사가 그러더군요. 인지그룹 다니는 직원들은 표정이 참 밝고 자부심도 강하다고. 직원 개개인의 표정이 회사의 이미지가 되고, 성공할 수 있는 척도가 되는 것입니다.
넷째, 이제 고객에게 만족만 주는 시대는 지났습니다. 고객 감동을 불러일으켜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선 직원들이 행복하게 일 해야만 가능하겠죠.” 그는 얼마 전 인수가 결정된 회사직원들 전부에게 몰래 각 계좌로 상여금을 전달했다.
뒤늦게 이를 안 직원들은 인수회사에 애정을 보이고 적극 따랐음은 물론이다. 그는 자신의 말을 흡인력 있게 설명했다. 정구용 회장의 리더쉽의 한 부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동문회, 그리고 고향을 향한 노래
묘금초(9회), 옥천중(10회)을 졸업했다. 초등학교는 아쉽지만 이미 폐교되었다. 그는 앞서 2001년 묘금초 학생들과 학부모들, 교사들을 초청해 회사를 견학하고, 서울 구경을 시켜준 적이 있다. 그것을 마지막으로 묘금초는 폐교됐다.
당시 도천리는 40여 가구가 살았다. 정구용씨는 2남1녀 중 장손으로 할아버지와 아버지 등 6식구와 함께 살았다. 초등학교는 가뿐하게 갔지만, 옥천중학교를 통근할 때는 새벽안개를 헤집고 산을 두 개 넘고, 십리를 걸어 영동 심천에 가서 기차를 타야 했다.
사실은 먼저 옥천보다 서울에 있는 중학교에 원서를 넣었으나 떨어져 옥천중에 입학을 했다. 그 당시 묘금초에서 중학교를 간 학생은 졸업생 30명 중 남자 4명, 여자 1명 등 5명뿐이 안 됐다. 그 중 한 명은 세상을 떠났고, 고려대 의과대학 안과과장인 이태수씨와 한국전력에 근무하다 정년퇴임한 신동덕씨는 지금도 자주 만나는 의좋은 친구들이다.
이원농공단지에 이제 규모가 두 번째로 큰 인지컨트롤스 공장이 들어선다. 그의 고향사랑이 밑바탕에 깔려 있겠지만, 냉철한 기업인인 정 회장은 반드시 그런 감성적인 것만 가지고 접근하지 않았다.
고향 옥천에 투자, 출향인들의 바람
옥천의 편리한 교통과 지리적 위치 등을 면밀히 분석하고 결정한 것이다. 그는 인력 모집에도 조심스럽다. 무조건 고향사람이라고 다 받아주면, 결국 서로에게 아무런 이득도 못 얻은 채 생채기만 준다는 것이다. 공과 사는 엄밀히 구분하되 능력있는 고향사람에게 많은 기회를 주려고 한다.
◇책 : 삼성개혁 10년, 아침형 인간 |
고향인 청성면 도천리에는 이제 연고가 없다. 가끔 명절 때 찾아가는 정도이다. 그는 고향이 자꾸 삭막해지지는 않을까 걱정이다. 예전에는 진짜 푸근한 인심 느끼는 고향이었는데, 다소 그게 아쉽다면서 말이다.
연임을 하면서 재경옥천중 총 동문회 회장을 맡고 있는 그는 동문들의 조그만 관심을 호소한다. 옥천중 배구부에 매달 100만원씩 후원금으로 지급하는 것도 액수가 모자라 늘 고민한다고, 동문들이 십시일반한다면 충분히 가능할텐데, 그렇지 못해 늘 안타깝다고 한다. 그는 이제 고향과 한층 더 가까워졌다. 고향은 60대의 활기 넘치는 또 하나의 CEO를 배출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