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쁘게 법정을 오가면서도 늘 ‘고향’에 관한 일이라면 그는 기꺼이 시간을 냈다. 시간을 내지 못하더라도 늘 여유있게 응대하며 고향에 관한 애정을 표했다. ‘군서면 오동리 무중골’이라는 자신의 어린시절을 가꿔 준 물리적 공간과 ‘군서초(36회)’와 ‘옥천중(11회)’ 등 자신의 학창시절의 추억을 고스란히 간직한 학교 공간은 살면서 기대고 의지할 만한 쉼터였다. 타지에서 열심히 싸우며 일할 수 있는 힘을 준 곳이 바로 그 곳이기 때문이다.
이제 어느새 환갑을 눈앞에 두고 있지만 그의 기억들은 무엇보다 선명하게 각인되고 있는 듯 했다. 나이가 들면 들수록 말이다. 그 기억들이 바래질 때 마다 그는 자신의 힘을 보태 되살리곤 했다. 모교인 옥천중에 피아노와 수많은 배구공들, 그리고 옥천중 교문까지 기증을 한 것도 다 거기서 비롯된 것이었다.
그것은 꼭 소문을 내지 않아도 모교와 자신만의 은밀한 소통만으로 충분히 즐거웠으리라. 하지만, 좋은 소식은 어디서든 새어나오는 법. 그런 선행은 그를 통해서가 아니라 후배인 곽봉호씨를 통해서 들을 수 있었다.
◆나의 고향 무중골
김홍헌(57)씨다. 그는 군서초와 옥천중을 졸업하고, 서울대 법대를 나와 현재 법무법인 동일에서 변호사를 하고 있다. 2003년도에는 ‘자랑스런 서화동우인상’을 수상했고, 올해에는 ‘자랑스런 옥천중 동문상’을 수상했다.
그가 이렇게 상을 탄 데에는 음으로 양으로 학교에 대한 애정을 오랫동안 보여 왔기 때문이었다. 그는 한 장의 사진처럼 고향에 대한 기억을 잘 보듬고 있었다. 다음은 그가 서화동우회 카페에 올린 글이다.
“제가 고향 군서를 떠난 지 어언 30여년이 지났지만 요사이도 저는 가끔 어렸을 적 군서초등학교에 다닐 때의 아련한 추억에 가슴 저미고 있고, 꿈에서도 초등학교의 소꿉친구들과 서화천에서 미역감던 일, 가을 운동회에서 달리기하다가 넘어져 이를 지켜보시던 지금은 작고하신 어머님께서 안타까워하시던 일, 산불을 내고 도망갔으나 이윽고 들켜서 저 대신에 아버님께서 불탄 산소에 막걸리를 붇고서 액땜 고사를 지내시던 일, 참외와 수박서리를 하러 갔다가 겨우 오이 두개만을 따고 있던 중 모의를 눈치채신 아버님에 의한 발각으로 집에 돌아와서 종아리를 맞던 일, 초등학교를 졸업하며 옥천중학교가 아닌 대전중학교를 지원하려고 하자 지금은 초등학교 총동문회장이신 김광수 선생님께서,"너 같은 꼬마가 기차통학을 하다가는 기차 칸에서 사람에 치여 죽을 수도 있다"면서 극구 말리시던 일 등이 생생하게 기억난답니다”
그는 학창시절 지독한 모범생이었다. 초중고등학교까지 결석 한 번 하지 않고 학교에 나가 개근상을 받기도 할 정도로 열성적이었다. 아무리 눈비가 휘몰아 쳐도 그는 학교에 갔다. 자전거 살 돈도 없던 시절, 그는 늘 걸어서 학교를 다녔다.
중학교를 졸업하고, 대전쪽으로 학교에 가려 했으나 큰 형님이 청주에서 공무원 생활을 해 ‘청주고’로 진학을 했다. 재수를 한번 하고 서울대 법대에 진학해 지금에 이르기까지 고향은 늘 든든한 지원군이었다. 지금 고향에는 사촌 형수밖에 없지만, 그래도 고향 갈 일이 있으면 언제나 시간을 비워둔다.
◆내 후배들을 위해
그는 얼마 전 옥천중 총동문 체육대회를 참가했다. “이렇게 불러줄 때만 얼굴 잠깐 보이고, 이제 고향에 자주 못 가죠. 그래도 마음은 늘 그 곳에 있습니다. 옥천중 동문들은 지금도 1년에 네 차례 정도 만나 우애를 나눕니다. 이번 체육대회에도 12명이 왔더라구요. 이젠 원로측에 들어가는데. 옥천중 교문은 옛날에 수학을 가르치던 임신재 교장선생님이 부탁을 하셔서 제가 해드렸지요. 배구부 학생들에게 공도 많이 갖다주곤 했는데….”
그의 고향사랑은 단순히 추억하고 그리워하는데만 있지 않았다. 고향과 학교에 늘 관심을 갖고 자신이 채워줄 수 있는 부분에 대해 같이 고민하고 있었다. 그리고 남모르게 학교에 도움을 주었다. “기억뿐만 아니라 꿈속에서 조차 자주 초등학교 시절의 모습이 보이는데 이는 아마도 여러분도 마찬가지겠지요.”
저기 먼 추억의 발치에서, 저 멀리 서울에서 그는 고향을 끈을 다시 잡아 끌었다. 그의 따뜻한 독백에서 울림이 느껴지는 것은 그가 쌓아놓은 그리고 고향을 위해 하고자 하는 것들이 눈앞에 그려졌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