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청산을 노래했다. 세월이 흘러도 변치 않고 자신의 마음속 깊은 곳에 흐르는 그 감성의 맥을 찾아냈고, 그것을 조심스레 끌어올렸다.
그 기억은 시간의 침식작용에 의해 닳았지만, 그 원형만큼은 그대로 보존돼 있었다. 오히려 시간은 군더더기를 떨궈내고 본질을 그려내는데 도움을 준 것 같았다. 그의 작품은 한결같이 청산송(靑山頌)이라는 제목을 달고 있다. 미술평론가 최태만씨는 이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그러고 보니 그의 고향마을 이름이 ‘청산’이다. 크게 관련은 없을지 모르지만, 청산이란 멋있는 이름을 지닌 고향이야말로 그가 마음에 그리고 있는 ‘잃어버린 낙원’일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 그것은 물리적으로 존재하는 공간을 지칭하는 것이 아니라 어린 시절 그가 보고 느꼈던 자연을 의미한다. 어린 시절의 순수로 돌아가고 싶은 욕망을 놓지 않는 한 우리는 모두 마음속에 이러한 잃어버린 낙원의 이미지를 품고 산다. 그는 우리에게 그 낙원에 대해 말하고 있는 것이다.”
그의 조각은 선이 살아있는 한 폭의 산수화이다. 그 선은 선(線)인 동시에 선(禪)이다. 많은 것을 표현하지 않고서도 많은 것을 말하고 있다. 자연과 인간 사이에 조용한 공존, 차분한 대화를 담고 있는 그의 작품은 평안과 사색으로 이끈다.
양면성의 고향, 지금은 그리움만
그를 소개한다. 청산면 인정리 출신 박수용(50·대전 도마동) 작가이다. 청산초·중·고를 졸업한 그는 대학 이전의 학창시절을 모두 청산에서 보냈다. 4형제 중 장남, 부모님은 인정리에서 농사를 짓고 계시고, 청산 박약국의 박명식 약사가 작은아버지이다. 그는 돌아보건대 아마 청산고를 졸업하고, 정규미술대학을 간 학생이 자신이 처음이었을 것이라고 회고한다. 그 이후에 한참 후배이자 같은 인정리 출신인 이기수(충북대 미대교수)씨가 같이 조각을 했지만 말이다.
그는 재수를 두 번 했다. 중학교 때 한 번, 고등학교 때 한 번. 촉망받는 학생이었던 그는 서울에 있는 고등학교와 대학교에 시험을 봤다 모두 낙방했다. 서울에서 고등학교 재수시절 그는 처음 미술관을 드나들었다고 했다. 피카소, 밀레, 루브르의 작품과 만난 것도 그 때였다.
서울로 비상하려 했던 그는 실패하고 다시 고향에 머물게 된다. 그래서 청산고등학교 시절은 우울했다고 했다. 그리고서 고3시절, 재수를 한 후 한남대 미술교육과에 입학한다.
그에게 고향은 양면성을 지닌다. 많은 가능성을 가진 자신을 제대로 품어주지 못해 오랜 방황의 길을 가게 한 원망적인 측면도 존재하지만, 한 가닥 길을 잡았을 때는 그 원망 이상으로 충만한 감성의 에너지를 내뿜어 준 아주 고마운 존재이다. 그래서 그는 고백한다.
“제가 청산에서 학창시절을 보내지 않았다면, 이런 작품을 감히 만들 수 없었을 거에요. 고향의 산과 들, 강, 사람들은 저를 말없이 키워준 아주 고마운 존재입니다.”
자부심 가진 국내 대표 조각가
그는 해외에서도 유명한 이탈리아 까라라 국립미술학교 조각과를 졸업했다. 이는 서대전여고에서 7년여 동안의 미술교사 생활을 하다가 내린 결정의 연장선상이었다. 좋은 선생님이 될 것이냐? 좋은 작가가 될 것이냐 고민했고, 그는 결국 자신에 축적된 끼를 제대로 펼치는 길을 택했다.
그는 조각가로서 드물게 지금까지 아홉 번의 개인전을 연 유명 작가이다. 그 이력에는 96년 독일에서의 개인전과 2002년 훌륭한 작가만 초대된다는 서울 박영덕 화랑에서의 전시도 포함돼 있다. 그가 그리는 풍경은 단지 풍경(landscpe)이 아니라 온 생태계를 함유한 우주이다. 사람과 나무, 물과 달이 단순하게 형상화돼 있으면서도 많은 생각을 갖게 한다.
그는 지금 공주시 반포면 송곡리의 자신의 솔골조각작업장에서 매일 창작의욕을 불태우고 있다. 바른 말은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한다는 그의 성격은 옥천의 문화예술에도 할 말이 많다. 96년에는 군에도 직접 방문해 쓴 소리를 한 적도 있다. 위대한 시인인 지용선생을 제대로 담아내지 못한 고향에 아직도 할 말이 많다.
일례로 그는 이태리의 푸치니 생가를 들었다. 그 곳에는 큰 오페라 하우스를 짓고 연중 푸치니를 주제로 한 공연을 하며, 푸치니 생가와 박물관 등 볼거리도 많이 만들어 관광객이 끊이질 않는다고 했다. 그는 옥천의 문화예술에 대해 구체적이고 사실적인 조언들을 많이 쏟아냈다. 이것이 그의 고향사랑을 반증하는 것이리라.
고향 청산을 너무도 사랑해 작품마다 ‘청산송’이라 붙이는 조각가 박수용, 우리는 그를 옥천의 대표적인 조각가로 자랑해도 될 듯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