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아침 공동세배는 최종복씨 댁에서 있겠습니다. 주민들께서는 한 분도 빠짐없이 참석해주시기 바랍니다."
설날 아침 까치소리는 아니지만 최재관 이장이 마을 엠프를 통해 설날 오전의 마을 공동일정을 알린 것이다. 이집 저집 아침 차례를 마친 주민들이 하나 둘 약속된 장소로 모여들었다. 객지에 나가 있는 사람들하며 오랜만에 보는 얼굴들도 많이 눈에 뜨인다.
"오랜만여! 그동안 잘 지냈는가?" "예,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하는 인사로부터 각종 정담이 오가는 최종복씨 집은 순식간에 4∼50명 주민들의 인사마당으로 가득하다. 젊은이는 젊은이대로 모여 웃어른께 세배하고 웃어른들은 덕담을 나눠주며 화기애애한 모습.
그야말로 우리 민족이 반만년을 전통으로 계승해온 아름다운 정경이 아닐 수 없다. 공동세배가 끝나자 마을에서 내놓은 막걸리 한 사발씩을 들며 윷놀이며 민속놀이판이 흥겹다. 이제는 각 마을에서 거의 찾아볼 길이 없는 이 정겨운 풍습을 군서면 상지리에서는 아직도 나이순으로 공동세배 전통으로 이어져 내려오고 있다. 상지리의 가장 큰 자랑거리라면 자랑거리이다.
옥천군과 금산군의 경계를 이루면서 충청남,북도의 도계마을인 이곳 상지리 상보골과 지경소 두 개 자연마을에 52가구 2백50여명의 주민들이 오손도손 살아가고 있다. 옛부터 지형이 험해 도둑소굴이 있었다 하여 '도둑 얼갱이'라는 지명을 갖고 있으며 전설로도 전해 내려오는 이곳은 비단 전설로만이 아니라 37번 국도가 개설되어 있다 해도 험하긴 마찬가지인 고장이다.
마을의 앞뒤를 높은 산이 가로막고 있어 늦게서야 해가 들고 일찍 해가 지는 곳으로 불려져 왔다. 실제로 취재 중 오후 5시가 다 되자 해는 이미 앞산을 넘어가 버렸는데 빤히 보이는 동평리 쪽을 보니 해가 아직도 들판을 비추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군서면에서 가장 위에 보가 있다 하여 상보마을이란 명칭을 얻었다는 이곳, 서화천 건너 산중턱에는 가물 때면 으레 군서면의 젖줄역할을 톡톡히 하는 저수지가 위치해 주로 외지사람들의 빙어낚시터가 되고 있다. 여름으로는 마을 앞 하천과 절벽의 절경이 자연히 사람들의 발길을 잇게 하고 있다. 이들이 떠나고 난 자리에는 쓰레기 등 오물청소가 남게되지만 경치가 좋은 것만은 인정받고 있는 셈이다.
일찍부터 금산군이 인접해 있는 관계로 인삼재배가 발달했고 딸기 또한 상지리 특산물로 20여가구가 재배한 바도 있다. 점차로 변화된 의식구조와 함께 이젠 마을 내에서 딸기 1집, 인삼 3∼4집, 느타리버섯 6집 등만이 소득작물로 재배되고 있을 따름이다. 대신에 마을의 부녀자들과 남자들은 회사나 도시의 아파트 등지에서 월급쟁이 생활을 하며 가족단위 농사를 짓는 사례가 많이 일반화된 모양을 보이고 있다. 대충 환산해도 30여명의 인원이 이러한 일자리를 택하고 있다.
상보골과 지경소 등 두개의 자연마을 중 금산군 추부면 성당1리 음지말과 경계를 이루고 있는 지경소는 군내에서 상징이 되다시피한 마을. 지금은 20호가 거주하고 있는데 도 경계인 점을 중시, 환경개선이나 마을정비에 서로 경쟁적으로 예산을 투입하고 있는 곳이기도 하다. 한 예로 최근까지 집 안마당을 지나던 농수로가 거듭된 주민들의 진정과 도계마을인 점이 배려되어 담밖으로 지나도록 고쳐졌으며 변소개량도 이루어졌다.
이에 뒤질세라 충남도와 금산군에서도 부엌개량을 통해 주민들의 사기를 높여주었다는 후문인데 언제인가 이동호 전 도지사가 도계마을을 순시한 자리에서 지경소의 지붕이 깨끗한 것을 보고는 당시 서강돈 군수에게 만족감을 표했다는 뒷얘기가 전해진다. 마을 주민들 중에서는 백인동 새마을지도자의 어머니와 아내인 방계옥씨, 이영임씨가 화목한 고부로 선정되어 이미 표창을 받은 바 있으며 홀시어머니 송연희씨를 잘 모시며 우애가 두터운 홍갑순씨 고부 역시 주민들로부터 칭송을 받고 있는 사람들이다.
여름철이면 도계인 금산군 추부면에서 걸러지지 않은 가축분뇨가 아침마다 농수로를 타고 내려와 농사에 큰 불편을 겪고 있는 마을로서는 수질보전 및 환경보전 문제가 최근들어 가장 중요한 문제로 부각되었다. 옥천군이 수질보전특별대책지구인 반면 금산군이 일반지역으로 분류되고 있으나 금강이라는 한 수계를 사용하고 있는 대한민국 한 국민으로서의 공동노력이 절실히 요구된다는 점을 주민들은 절실히 느끼고 있었다.
더불어 여름 장마철이면 주민들이 가장 큰 불편을 겪고 있는 점이 서화천 건너편의 농경지를 가는 것. 서화천 물이 상보를 넘을 때면 주민들은 바로 마을 앞에 논을 놔두고도 은행리로 5km남짓 돌아가야 하는 불편을 겪고 있다. 그래서 주민들은 세월교 가설을 요구하고 있으며 현재 노인들이 마땅히 모일 곳이 없는 점을 고려, 경로당이나 노인들이 모일 장소로 마련하는 것이 가장 큰 숙원이다.
이 마을을 고향으로 둔 인사들 중에는 최재술(우산초교 교감)씨, 임인재(군서면 산업계장)씨, 한재수(청원군 지적과장)씨, 김복천(대전에서 교사)등이 꼽힌다. 불과 몇 해 전만 해도 딸기가 가장 큰 소득작목이었던 도계마을 상지리. 이제 노인공경할 줄 알고 마을의 좋은 인심이 유지되길 바라는 마음이 온 주민의 가슴속에 하나 가득 채워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