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천에 섬이 있다. 정확히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그곳에 살고 있는지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어떤 이는 1백명이 조금 넘을 것이라고 하고, 어떤 이는 백명의 서너 배 쯤은 될 것이라고 말하며, 어떤 이는 천명에 육박할 것이라고 한다. 10년 전부터 각자 다른 외모와 언어를 가진 이들이 모여 살기 시작한 이 낯선 ‘섬’에 살고 있는 사람들은 외국인 이주 노동자들이다. 그 수는 알 수 없지만, 그들이 옥천 한가운데 떠있는 보이지 않는 ‘섬’에 고립된 채 살아가고 있는 사실은 분명히 확인할 수 있었다. 옥천의 외국인 이주 노동자, 그들을 만났다.
“4년이나 옥천에 있었는데, 옥천에 대해 어떤 느낌을 가지고 있나요?”
“…….”
인도네시아인 하리(27)는 난처한 듯 기자를 바라보았다. ‘4년’을 옥천에서 일했다는 말만 듣고 한국인에게 하듯 질문을 던졌으니 실례도 이만저만한 실례가 아니다. 허둥지둥 가지고 있던 인도네시아어 사전을 뒤져 다시 한번 ‘느낌’을 물었다.
“고향 자카르타는 트레픽(교통난)이 심해요. 옥천은 도로가(넓어서)좋아요. 서울 가봤어요. 대전, 부산, 대구도 가봤어요. 겨울엔 너무 추워 장갑을 3개씩 끼는데 귀도 아프고, 입술도 아파요. 여름엔 괜찮아요.”
그는 지금까지 4년을 옥천에 머물며, 쉬는 날은 자신의 친구들을 만나러 대전 등지로 다녔다고 한다. 직장동료 외에 옥천 사람들을 개인적으로 접해 본 적은 없다고 한다. 함께 자리한 일곱 명의 인도네시아 이주노동자 모두 비슷했다. 하리의 마지막 남은 1년 또한 지난 4년과 다른 변화가 생길 것이라고 기대하지 않는 것은 물론이다.
그는 친절하게 자신의 동료 인도네시아 이주노동자들을 소개했다. 인도네시아 자파가 고향인 아리(23)와 부띠(24), 수마트라가 고향인 독실한 무슬림 수하르(22), 결혼해 8살 난 딸을 고향에 남겨두고 옥천에 온 자야리(28), 비슷한 시기에 한국에 와 이제 1년 반이 지났다는 순코노(23)와 위도도(28), 그리고 한국 문화에 강한 호기심을 보이는 리끼(22)까지.
“사야 와르따완(나는 기자입니다)”
기자를 소개하는 서툰 발음에도 그들은 박수를 치며 환한 웃음으로 맞이했다.
“한국말 배우고 싶어요. 시간 없어요. 계속 일해요. 일 힘들어요. 그래도 옥천, 한국 배우고 싶어요.”
수하르와 리끼처럼 한국에서 보낸 시간보다, 보낼 시간이 많은 이들일 수록 우리말과 문화를 배우고 싶어 했다. 그들의 ‘희망사항’이 되어버린 이 당연한 요구를 듣고 난 뒤 차마 그들에게 당신들이 머물던 이곳 옥천을 기억해 달라는 말을 꺼낼 수 없었다. 그들을 섬에 가둔 것은 바로 우리의 ‘무관심’이었음을 확인하고 자리를 일어섰다.
현재 옥천지역 내의 어떤 기관도 옥천 외국인 이주 노동자에 관한 정확한 자료를 갖고 있지 않다. 옥천군의 경우 외국인 이주 노동자에 관한 제반 사무를 담당하는 공무원은 없으며 옥천에 거주하고 있는 외국인 이주노동자의 숫자조차 군 자체적으로 파악한 자료를 확보하지 못하고 있다.
옥천의 외국인 이주노동자관련자료 라고는 그들의 불법체류를 감시하고 처벌하기위해 경찰과 법무부 출입국관리사무소가 보유하고 있는 자료가 전부다. 인권의 사각지대에 무방비로 방치되고 있는 미등록 외국인 이주노동자의 인권을 보호하고 그들의 노동에 대한 정당한 권리를 돕기 위해 필요한 어떠한 형태의 정보도 관리되고 있지 못한 것이 현실인 것이다.
외국인 이주노동자의 불법체류를 감시하기 위해 기관에서 보유한 자료조차 그 내용에서 큰 차이를 보이는데, 옥천경찰서 관계자에 따르면 현재 지역의 24개 업체에서 126명의 외국인 이주노동자가 근무중인 반면, 청주출입국 관리사무소의 경우 경찰보유자료의 두 배에 가까운 211명의 외국인 이주노동자가 ‘합법적’으로 옥천에서 근무 중이라고 밝히고 있다.
그러나 경찰과 청주출입국관리사무소의 자료모두 ‘불법체류자’로 불리는 미등록 외국인 이주노동자에 대한 자료는 포함되지 않아 실제 옥천에서 노동을 제공하고 있는 외국인 이주 노동자에 숫자는 근사치조차 추정이 불가능한 것이 현실이다.
이와 관련하여 대전 외국인 이주노동자 종합지원센터 김봉구 소장은 “대전시의 경우 시가 확보하고 있는 합법적 이주노동자의 숫자는 200여명에 불과한 반면, 실제 2천명이 넘는 외국인 노동자가 대전시에서 일하는 것으로 추정된다”며 “옥천의 경우도 국가기관이 확인할 수 있는 이주노동자의 숫자를 서 너 배는 족히 넘는 외국인 이주노동자들이 지역에 거주하고 있을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외국인 노동자를 고용하고 있는 지역의 한 업체 관계자도 “인근 지역 농공단지의 외국인 숫자만 따져 봐도 국가기관이 제시하는 자료는 현실성이 없다고 본다”며 “최근 고용허가제의 실시로 불법체류외국인 노동자를 고용하는 업체는 드물지만, 옥천 전역에서 다양한 형태로 고용되어 있는 외국인 이주노동자의 수는 1천명에 육박할 것”이라고 했다.
그는 “현재 불법체류자라는 이유로 자신이 일하던 식당에서 임금도 받지 못한 채 해고되어 단속반원들의 눈을 피해 동료들의 숙소를 전전하는 한 외국인의 딱한 사정을 듣고 있다”며, “우리지역의 상당수의 불법체류자들이 기관의 단속과 이를 이용하는 업주의 횡포아래 방치되고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외국인 이주노동자에 대한 우리말과 문화의 교육과 관련하여 옥천 한국어학당의 전만길 교장은 “외국인 이주노동자를 위한 센터와 전담인력의 배치는 그들의 기본적인 인권을 위해서 뿐 아니라 풀뿌리 외교의 차원에서도 꼭 필요한 일”이라며 “개인이 시작할 수 있는 일이 아니며, 국가와 자치단체가 그 가치를 이해하고 이에 적극적으로 나서야 할 것”이라는 의견을 제시했다.
우리 지역에서 합법이든 불법이든 ‘체류’를 하며 우리들이 기피하는 노동현장에서 정당한 노동을 제공하고 있는 상당수의 외국인 노동자들. 문제는 이들의 권익을 보호하고 인권침해사례를 모니터할 수 있는 어떠한 형태의 기능도 우리지역에는 없다는 것이 현실이다.
이런 상황에서 그들에게 우리말을 가르치고 문화를 전하는 당연한 일이 오히려 ‘사캄가 될지도 모르는 것이 옥천 외국인이주노동자, 그들이 살고 있는 ‘섬’의 현실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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