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에 고생하신 어른들 행복하게 해주고 싶어요"
"옛날에 고생하신 어른들 행복하게 해주고 싶어요"
[내고향 옥천] 안남면 화학리 학촌 출신 선원건설 대표이사 홍선표
  • 황민호 기자 minho@okinews.com
  • 승인 2004.10.08 00:00
  • 호수 74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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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남 화학리 학촌 출신 홍선표씨

“다 기억나지요. 그럼요. 한 번 고향에 가면 일일이 다 찾아뵙고 인사를 드려야 하는데, 그러지 못해 늘 아쉬워요. 저 어렸을 때 정말로 고생 많이 하신 분들이라 그맘때 쯤 되면 다 행복하리라 생각했는데, 외로워 보여 안타까워요. 저 어렸을 때만 해도 동네 아이들 떼지어 놀면서 참 시끌벅적했는데, 지금은 애기 울음소리 듣기가 힘이 드니 격세지감도 느껴지죠.”

그 어른들 주름진 손 꼭 잡아주며 ‘행복해야 한다’고 말을 건네고 싶은데, 그게 그리 쉽지가 않은가 보다. 고향은 늘 말없이 감싸주고 안아줬지만, 세월의 이끼가 묻어난 고향마을의 쇠락해진 정취는 가끔 고향을 찾은 그의 마음을 아리게 했다.

밤낮없이 땅을 파고, 또 파고 살았던 고향 마을. 그 분들만큼은 행복했어야 한다는 믿음, 지금쯤은 그랬어야 한다는 그 마음이 아직 남아 있었기에 그의 고향사랑은 가능했을지도 모른다. 매년 어르신들 모시고 부곡하와이, 수안보 온천 등을 다녔고, 해마다 안남 어버이날 잔치 때마다 100만원의 지원금을 아끼지 않고 내놓았다.

그렇게 하나 둘, 고향에 대한 짐, 아니 고향이 베풀어 준 사랑을 갚아나가려 했는지도 모르겠다. 안남면 화학리 학촌의 개구쟁이 소년 홍선표(58·선원건설 대표)씨가 오는 9일 작은 천사들(리틀 엔젤스)과 함께 옥천을 찾는다. 2001년 5월에 이어 두 번째다.

안남초 24회 졸업생, 안남의 민종규, 정구창, 주재홍씨 등과 같은 연배다. 그는 늘 고향을 찾으면서 에너지를 충전한다고 했다. 안남초를 졸업하고, 큰아버지가 있는 강원도 삼척에서 중고등학교를 나온 홍선표씨는 72년도 한국티타늄회사 직원을 거쳐 선문대학교 상임이사, 한국문화재단 리틀엔젤스 상임이사, 선원건설(http://sunwon.co.kr) 대표이사를 거치면서 자신의 경력을 쌓아갔다.

◆참가정과 남북통일을 꿈꾼다

윤리와 도덕의 상실의 시대, 그가 진단하는 요즘 세태는 그렇다. 옛날 전통윤리가 사라져가고, 서로를 위하는 가족문화도 찾아보기 힘들다. 말초적이고 즉각적인 반응만 우선하고 기다림이란 미덕이 사라진 시대에서 가정이란 ‘둥지’는 인성을 보듬을 수 있는 쉼터일는지도 모른다.

‘통일교’ 신자인 그는 남북통일운동국민연합 옥천군위원회(위원장 김의창)와 참가정실천운동본부 옥천군위원회(회장 이문수)가 하는 일에는 빠짐없이 참석하고 매년 1천만원의 재정을 실질적으로 지원하고 있다.

모든 일들이 자신에서 비롯되고, 자신에게 귀결된다고 믿는 그는 가장 작은 주춧돌의 모임인 가정에서부터 나라의 통일에 이르기까지 스스로의 마음가짐에서 우러난다고 생각한다.

“서로를 이해하고 배려하는 마음이 전제되어야 행복한 가정이 될 수 있듯이, 남북통일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합니다. 일단 50년 넘게 격리됐던 민족의 동질성 회복이 우선이라고 생각해요. 가출한 형이 50년 만에 돌아온다고 해서 쉽게 친해지겠습니까? 자라온 환경이 다르니까 분쟁만 일어날 뿐이지요. 서로 완전한 만남, 통일이 되기 전에 문화 예술교류, 경제협력 등을 통해 민족의 동질성을 회복하는 것이 먼저이고, 나머지 정치적인 것들은 후차적인 문제입니다.”

그는 요즘 농촌에 유행처럼 번지는 외국인 처녀와 결혼하기가 서로에게 큰 상처만 남긴 채 나쁜 영향을 미친다고 말했다.

“사랑을 돈으로 거래하다니요. 그것은 당초부터 안 되는 일입니다. 농촌 남자는 결혼을 목적으로 하고, 외국인 여자는 경제적인 목적으로 한국에 오니 그것이 충돌될 수밖에요. 상대방의 문화를 이해하고, 사랑을 키운 후에 결혼하는 문화가 자리잡아야 합니다.”

◆문화예술의 고장 옥천이 되길

그도 같은 이야길 했다. 그것은 어쩌면 지극히 상식적인 ‘옥천의 길’인지도 모르겠다. 금강을 끌어안고 사는 ‘옥천의 길’이란 당초부터 물질문명보다는 자연 안에서 인간 정신문명의 고양이라는 생각을 그도 한 모양이다.

‘문화예술의 고장 옥천’ 그가 꿈꾸는 고향의 별칭은 이랬다. 

“옥천이라는 고장을 어떻게 디자인할 것인가 하는 생각이 명확해야 합니다. 어떤 문화와 예술을 취할 것인가? 그리고 그것들이 어떻게 마을 곳곳에 시가지내에서 형상화될 것인가 생각해야 합니다. 하다못해 나무를 심더라도 고민을 해봐야 합니다. 가령 37번 국도 보은 가는 길에 벚꽃나무 길을 멋지게 조성해 놓고 병충해 때문에 고사목을 만들고, 전깃줄로 미관을 해친다거나 하는 것은 전혀 문화예술적 감각이 없는 행위입니다.”

이번 리틀엔젤스 공연도 문화예술회관이 건립되면 하려고 했지만, 군에서 요청을 해와 앞서 하게 됐단다.

“적어도 옥천에서만큼은 문화 예술인들이 제대로 대접을 받고, 공연과 전시 등을 흡족하게 할 수 있는 환경이 마련됐으면 합니다. 자치단체의 예산으로 어렵다면 민관이 꾸준하게 토의를 거쳐 옥천 미래계획을 세우고, 중앙정부의 예산을 따오면 될 것입니다.”

참가정과 남북통일, 그리고 문화예술 옥천에 이르기까지 그의 고향사랑의 범위는 넓었지만, 그것은 안남 화학리 학촌 사람들을 사랑하는 애틋한 마음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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