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꽃 구경하러 왔어요”라고 해주세요!
“오늘은 꽃 구경하러 왔어요”라고 해주세요!
야생화 농장 ‘기찻길옆뜰’ 안성이씨
반려식물 시대, 힘들어도 꽃 보면 힐링되니 꽃은 자연치유제
취미로 시작한 꽃 모음, 이젠 옥천 유일의 야생화 농장
오복떡집, 사과나무 운영 후 다시 찾은 인생 2막 꽃 농장
  • 이안재 기자 ajlee@okinews.com
  • 승인 2019.07.10 13:4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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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이 궁금했다.

옥천읍 서정리 마을에 한 번씩 가다보면 언젠가부터 ‘기찻길옆뜰’이란 조그만 안내 간판이 보였다. 뭐지? 하지만 실제 가볼 생각은 별로 못했다. 호기심 부족이었을까?

그러던 중 우연한 기회에 기찻길옆뜰을 마주했다.

서정리 마을과 철로가 있는 사잇길로 무작정 들어갔다가 마침 한 사람으로부터 더 이상 가보았자 길이 없다는 말을 들었다.

‘기찻길옆뜰’ 간판이 새겨진 곳이다.

차를 세우고, 길이 없다고 안내해준 이에게 물었다. 여기가 야생화 농장이냐고.

그렇게 만난 사람이 안성이(61, 옥천읍 서정리)씨다.

“여기에 꽃을 사 들이고 심고 한 지 이제 8년이 지났네요. 서정리에 지인과 함께 축사를 하려고 사놓았던 땅이 여기인데, 하던 일을 접고 나서 다육이 농장을 순례하다시피 했어요. 판암동도 가고 보은도 가고 다육이가 좋아서 찾아가고, 사들이고 그랬죠. 그런데 보은을 가니까 다육이와 야생화도 같이 하는 거예요. 야생화를 보니 꽃이 더 이쁘더라고요.”

그렇게 안씨의 야생화 여행은 시작됐다.

처음부터 무슨 목적을 가지고 하던 일을 그만 두었던 것은 아니었다. 하던 일 잘 안됐던 것도 아니었다.

웬만한 옥천 사람들이라면 안씨가 운영했던 상호를 한 번쯤 들어봤을 터.

처음에 ‘오복떡집’을 했다. 대전 친정에서 배운 떡 기술을 기반으로 떡집을 차렸고, 떡집은 잘 됐다. 하지만 밤에도 제대로 쉬지 못하고 행사가 많은 금요일, 토요일을 꼬박 새워야 하는 떡집은 너무 힘들었다. ‘이게 사람 살려고 하는 일인가?’ 하는 생각에 만 7년을 하다가 그만두자고 했다.

그래서 두 번째로 문을 연 것이 옥천읍 중심가에 낸 ‘사과나무’였다. 떡집을 그만두고 무얼할까 고민하다가 마침 떡볶이 요리가 한참 개발될 때 청소년, 학생들이 많이 찾을 수 있는 먹을거리를 만들었다. 떡볶이에 치즈를 올려 판매를 하니 인기가 좋았다. 사과나무를 운영할 당시 학교를 다녔던 청소년이라면 한 번쯤은 가봤던 곳이기도 할 터이다.

사과나무를 8년을 운영했다. 정신없이 음식 만들고, 매일을 전쟁처럼 지냈던 그 시간이 지날 무렵, 아이들이 대학을 졸업하니 뭐랄까 목적의식 같은 게 사라졌다. 인생 권태기 같은 게 엄습했고, 잘 나가던 사과나무를 접기로 했다.

그게 2011년이다.

“옥천신문에 내니 1주일도 안돼서 다른 사람이 하겠다고 나서더라고요. 새로 하신다는 분에게 1달 동안 인계해주고, 김장해놓고 겨울을 지냈어요. 근데 당시에 나이가 많은 것도 아니고, 봄 되니 2012년이잖아요? 그때부터 다육이 구경하러 판암동부터 시작해서 순례를 다녔어요.”

여기저기 다육이도 보러 다니고, 예쁘면 사오기도 하고.

그러다 보은 하늘빛식물원에 갔는데 야생화가 보였다. 그러다보니 다육이보다 야생화가 더 예뻐 보였다. 그래서 꽃집을 해볼까 하고 ‘우리꽃방’에 가서 3개월 동안 있으면서 꽃 공부를 했다.

그런데 안씨 눈에 자꾸 야생화가 밟혔다. 야생화 쪽으로 자꾸 눈길이 갔다.

그 와중에 농업기술센터에서 하는 생활원예 프로그램을 알게 되었고, 평소 남편과 알고 지내던 강영경씨와 함께 야생화 공부에 빠져들게 되었다.

“그 프로그램을 하면서 우리도 전문 기술이 있으면 좋겠다. 몇몇이라도 야생화 모임을 만들자고 했어요. 그래서 향수길야생화연구회를 창립하게 되었고요. 강영경씨가 회장을 맡고 4년 동안 총무를 맡아 했지요.”

8년 전의 일이다. 총무를 하면서 충청북도내 야생화 단체는 물론 여기저기를 부지런히 쫓아다녔다. 아마도 100군데 이상을 다녔을 거라고 기억한다. 그리고 지금은 내려놓았지만 향수뜰야생화연구회 회장도 역임했다.

“이쁜 꽃 보면 갖고 싶죠. 사서 키워야 공부가 된다고들 했어요. 처음에는 한 개만 가지면 된다고 생각했는데요. 가지다 보니 자꾸 욕심이 생기는 거예요. 야생화를 하도 사들이다 보니까 신랑한테는 꽃값이 실제 사온 금액의 ‘반값’이라고 하기도 했고요. 이거 신랑이 알면 안 되는 얘긴데. 하하.”

꽃이 좋아 쫓아다녔고, 꽃을 사들이고 키우는 데만 열중했던 시절이었으니 별다른 수입이 있었을 리는 만무한 일. 그래도 좋았다.

언젠가 방송을 보았는데 나이 50을 넘어서 장사하려면 취미삼아 좋아하는 것을 해야 한다는 얘기가 있었다고 했다. 그 말이 딱 가슴에 와닿았다.

야생화 농장을 하자고 시작한 것은 아니지만 하루 종일 풀 뽑고, 정리해주고, 바쁜 일상이다. 그래도 꽃을 키우면서는 힘들어도 힘들지 않다고 느낀다. 힘들게 하루를 보냈어도 꽃을 보면 힘든 생각이 사그라든다. 어쩌다보니 야생화 농장을 업으로 하게 되었지만 ‘잘되면 돈 벌어서 좋고, 안 된다고 해도 꽃 구경해서 힐링돼서 좋고’란다.

“그거 아세요? 산이나 들에 있는 들꽃을 예쁘다고, 귀하다고 그냥 캐오면 그 아이들이 십중팔구 죽어요. 그 조건에 맞춰서 살던 애들이기 때문이에요. 그 꽃이 살던 그 곳에 놔두고 보는 기쁨이 더 큰 거죠.”

안씨가 보유하고 있는 야생화는 정확히 헤아릴 수는 없지만 300종은 넘을 것이란다. 8년 동안 꽃을 사들이고 공을 들여 안씨의 손때가 묻은 것이다. 그러니 자연히 돈을 준다고 해도 팔 수 없는 것들이 있다. 오래 키워온 것들이다. 가령 안씨의 화원 들어가는 입구에 있는 물싸리가 그런 종류이다. 누가 팔라고 해도 못 파는 그런 꽃. 안씨에게 있어서는 차마 팔기 어려운 것이리라.

안씨는 자신의 행복을 여럿과 나누고 싶어 했다. 교육청 행복교육지원센터와 연결됐다. 센터 관계자가 안씨의 야생화농장을 방문한 후 군내 학생들에게 훌륭한 체험학습장이 될 것이라고 판단했다 한다. 기찻길옆뜰 야생화농장이 이제 우리 고장 아이들의 야생화 체험장으로 공개될 날이 머지않았다.

“꽃들 중에 잘 번성하는 것들이 있어요. 그냥 뽑아버리기도 아까워서 포토에 담아서 오시는 분들에게 그냥 드리기도 하죠. 그러면 어떤 분들은 나중에 드링크 음료 한 박스, 수박 한 통도 사오시고 그래요. 서로 나누는 기쁨이 있죠. 이제 야생화 농장으로 간판 걸고 본격적으로 영업을 한 지 1년이 좀 지났네요. 꽃 구경 하시고 싶으면 언제든 오세요. 그리고 ‘오늘은 꽃 구경 하러 왔다’고 말씀만 하세요. 꽃 보며 힐링하고 가신다면 저야 더 바랄 바가 없어요.”

나이 예순에 새로 시작한 인생 2막. 안성이씨의 기찻길옆뜰 야생화 농장엔 수많은 꽃들이 사람들을 기다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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