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천군 하계아르바이트가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7월6일부터 31일까지 24일간 61명의 청년을 선발했다. 아무래도 다른 일에 비해 경험도 쌓고 편하다고 생각해서인지 3배 이상 지원자가 몰리는 등 경쟁이 치열했다. 사회적 배려대상과 지역 대학인 충북도립대 학생 일부 할당을 제외하고 추첨제로 뽑다보니 순간의 추첨으로 ‘희비’가 갈리기도 한다. 그래도 청년들이 보이기 시작하니 군청과 각 읍면사무소에서도 활력이 돈다. 멀리서도 눈에 띄는 젊은이들이다. 방학을 맞아 군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는 금기원(23), 이아름(21)씨다. 2학기 복학을 앞두고 대학 등록금, 복학 준비 등 고민이 많다. 옥천 토박이로서 옥천에 대한 애정도 남다르다. 저마다의 바람을 가지고 있는 두 청년의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전기계열사 취업이 꿈, 군복무 마치고 일하며 복학 준비
금기원(23)씨는 옥천읍 서정리 출신으로 삼양초, 옥천중, 충북산업과학고를 나왔다. 대학도 옥천이다. 충북도립대 전기시스템공학과에 입학해 2학년 1학기까지 마치고 군대를 갔다. 작년 10월에 제대했다. 그러나 9월에 개강하는 2학기 과정에 복학하기 위해서는 1년을 더 기다려야만 하는 상황. 난감했다. “복학하기까지 기간이 너무 길었어요. 그동안 뭘 해야 하나 이리저리 알아보다 군북면에서 청년 일자리 지원을 해주더라고요.” 6개월 동안 민원 상대 등의 업무를 했다. 일을 마쳐갈 때가 될 때쯤 행운이 굴러 들어왔다. 아는 사람이 군청 알바를 소개해준데다 도립대 지역 상생 협약 차원으로 우선 선발대상이었던 것이다. 1년 가까운 시간을 기다려 하는 입장이었지만 알차게 채워나갈 수 있게 되었다. 자신 있었다. 일머리가 있었기 때문.
일하는 건 문제가 없었다. 문제는 좀처럼 잠잠해지지 않는 그 놈의 코로나. 재대 이후 쭉 일을 해왔던 터라 이번 일만 끝나면 꼭 여행을 가겠노라고 다짐했었다. 부산과 대구로 여행지도 정해놓았다. 그러나 코로나 때문에 계획을 접을 수밖에 없었다고. 기대가 컸던 만큼 속상함도 컸다. “아쉽지만 여행은 못 가지만 어쩌겠어요. 개학이 얼마 안 남았으니 열심히 복학 준비나 해야죠.” 아르바이트 기간은 7월 6일부터 시작해서 7월 31일까지다.
꿈을 이야기할 때는 눈빛이 유독 빛났다. 충북도립대 전기시스템공학과 학생인 그는 자신의 전공을 살려 전기 계열로 취업하고 싶다. 조금 욕심을 내서 한전에 취업하는 것이 가장 큰 목표라고. “이왕이면 옥천 한전에 취업해서 다니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겠죠.” 한 명의 청년이라도 지역에 머물게 할 수 있는 옥천도 감지덕지일 것이다.
빈말이 아니다. 일자리만 있다면 그는 옥천에 살고 싶다. “저는 옥천에 사는 게 만족스러워요. 우선은 친한 친구들이 있는 곳이니까요. 동네 친구들 불러서 옥천 안에서 놀아요. 그리고 바로 옆에 대전이 있어서 볼 일이 있음 언제든 가면 돼서 불편한 건 크게 없는 것 같아요.” 그러나 현실은 현실이다. 일자리가 마땅치 않은 옥천인지라 그도 대전으로 나갈 생각이다. 그는 청년들이 지역에 뿌리내리기 위해서는 우선적으로 일자리가 마련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정말 10년 후에는 젊은 사람들이 안 보일 수 있다는 말을 많이 들었어요. 청년층이 빠져나가는 것을 방지하려면 안정된 일자리 확충이 필요해요.”
등록금 보태기 위해 알바, 부모님 농사일 틈틈이 도와주기도
비싸다. 비싸도 너무 비싸다. 이아람씨는 옷이 좋아 한남대 의류학과에 진학해 공부하고 있다. 그런데 심각한 문제가 있으니, 바로 400만원이 넘어가는 등록금이다. 의류학과는 예체능 계열에 포함되어 등록금이 높다. 학교가 사립인 탓도 있을 것이다. 도저히 한 달 일해서 메꿀 수 있는 금액이 아니다. “알바를 안 할 수가 없죠. 학비를 내는데 조금이라도 보탬이 되고 싶은 마음이에요. 주말에는 편의점 알바를 하고 있는데 군청 일 끝나고도 계속 할 것 같아요.” 다행히 군청에서 하는 일은 어렵지 않다. 주로 민원인 상대나 복사, 파쇄 등 기본적인 일들을 하고 직원들이 어려운 일은 시키지 않아 할만 하다. 일하는 시간은 오전 9시부터 저녁 6시까지. 다른 알바보다 수월해서 그런지 경쟁률이 꽤 쎄다고 한다. 그녀는 무작위 추첨을 통해 4대 1의 경쟁률을 뚫고 왔다.
옷에 관심이 많아 의상학과에 진학했지만 그녀는 그 쪽으로 꿈이 정해진 것은 아니라고 했다. 아직 이 길이다 싶은 것은 없지만 다양한 경험을 하며 진로를 모색하고 싶다고. 좌충우돌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중에 어떤 일을 하든 젊었을 때의 경험들이 자양분이 될 것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
농사 짓는 것도 염두에 두고 있다고. 귀가 쫑긋한 말이다. 그녀의 부모님은 삼청리에서 복숭아 농사를 짓고 있다. 덕분에 복숭아는 정말 원 없이 먹는다는 그녀는 가끔씩 복숭아 포장일을 돕는다. 더운 날 고생하는 부모님을 위해 일손을 돕는 것이다. “큰 도움은 못 되지만 뿌듯하죠. 나중에 부모님의 복숭아 밭을 이어 받아 농사 짓는 것도 염두에 두고 있어요. 지금 또 복숭아 철이라 알바가 끝나는 8월에는 좀 바빠질 예정이랍니다.” ”
이아람씨 역시 일자리만 마련된다면 옥천에 살고 싶다. 그녀는 군남초를 나와 옥천읍 장야리로 이사를 온 뒤 옥천여중과 옥천고를 졸업했다. “저희 부모님이 여기서 농사를 짓고 계시다 보니 옥천에 살면 가장 좋죠.” 옥천에 바라는 점이 있다면 버스 노선이 사라지지만 않았으면 좋겠다. “부모님 복숭아 밭이 삼청리에 있어요. 그런 시골 깊숙이 들어오는 버스가 지금도 많지는 않아요. 근데 아예 사라진다고 생각하면 정말 힘들 것 같아요. 저 혼자 밭에 갈 때는 버스 타고 가니까요.”
서로 다른 이유를 가지고 군청에서 일을 하고 있는 그들은 착실하게 자기 삶을 영위해가고 있었다. 옥천에서 나고 자라 옥천을 사랑하는 마음을 가진 두 청년이 어떤 미래를 그려갈지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