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한 살 소년 농부를 만나다
열한 살 소년 농부를 만나다
이앙기와 소형 굴착기를 능숙하게 다루는 삼양초 4학년 김대성 학생
안남면 도농리에서 할아버지와 재미난 농사 협업
‘앞으로도 옥천에서 이것저것 다 농사짓고 싶어요’
  • 김재석 인턴기자 psj@okinews.com
  • 승인 2021.06.17 13:2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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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제공: 월간 옥이네
사진제공: 월간 옥이네

무언가 단단히 홀린 게 분명했다. 읍내 초등학교 4학년 학생이 학교 끝나기 무섭게 매일 면에 사는 할아버지를 찾아온다는 것이. 더구나 힘든 농사일을 매우 즐겁게 거든다는 것은 쉬이 떠올릴 수 없었다. ‘정말?’이란 반문이 조건반사적으로 튀어 나왔다. 한창 친구랑 스마트폰으로 게임 하고, 유튜브 시청에 목맬 나이인데 그는 어김없이 농사일을 하러 찾아왔다.

할아버지와 끈끈한 애착 관계가 있는 게 분명했지만, 그것만으로 설명할 수 없다. 농사일 자체가 그에게 분명한 몰입감을 선사하고 있었다. 특히 논에서 이앙기를 직접 몰고, 소형 굴착기로 밭을 개간하는 일이 그에게 큰 매력으로 다가온 듯하다. 할아버지의 논밭에 이끌린 열한 살 김대성 학생, 요즘 정말 보기 힘든 자발적인 ‘소년 농부’의 탄생이었다. 농부를 꿈꾸는 그는 ‘흙의 감촉과 자연이 주는 풍광’을 벌써 알아버렸다. 

할아버지가 어디 있는지도 귀신같이 찾는다. 할아버지의 흔적, 발자국, 농기계가 남긴 바퀴 흔적을 마치 셜록 홈즈처럼 쫓아서 어디 숨어도 꽁꽁 찾아낼 태세였다. 아무리 꼭대기 논밭에 숨어도 기가 막히게 찾아냈다. 조그만 오솔길을 따라 두발자전거의 페달을 굴려 바람을 가르며 할아버지를 찾아 나서는 그의 모습은 마치 동화 속 한 장면 같았다. 

아버지, 어머니보다 할아버지가 좋다는 김대성 학생(11), 이앙기가 미처 못다 한 모내기는 손 모내기로 하라니까 할아버지도 같이하자고 투덜거리면서 곧잘 하는 그의 모습에, 50년 세월을 넘는 할아버지와의 찐한 우정과 연대가 느껴졌다. 흙이 군데군데 묻어있는 영락없는 농투성이 신발에 농부가 되고 싶다는 진심이 와닿았다.

더 다양한 농사일에 도전하고 싶고, 더 많은 작물을 심어보고 싶다는 그의 말에 앞으로의 삶이 더 궁금해진다. 벼농사를 직접 짓는 만큼, 밥에 대한 사랑도 각별했다. 다이어트 열풍을 넘어 상식으로 자리 잡은 요즘, ‘저탄고지’가 모두가 숙지해야 할 사자성어로 자리 잡은 가운데 그의 고봉밥 사랑은 어찌나 반가운 것이었던지. 

월간옥이네 소혜미 기자가 무려 3~4시간이나 기다려 찍었던 사진, 이앙기 위에 올라앉은 귀여운 꼬꼬마 4학년 그 아이를 단숨에 만나보고 싶은 이유였다. 할아버지와 주고받는 대화는 정겹기 그지없었으며 도농리 황촌을 배경으로 한 산과 논밭, 그리고 오솔길은 장대한 산수화 같았다. 사람 한 명 지나가지 않은 그곳에서 태양은 작열하고 있었고, 논은 물을 그득 담아 아래 뿌리를 식히며 광합성을 충분히 하고 있었다. 더블캡 트럭 앞에 장화 하나를 툭 던져놓자, 신발을 벗고 신기 시작했다. 손모내기는 처음이라는 데 익숙하게 빈 곳에 툭툭 꽂기 시작했다.

“네가 이앙기로 가지고 다 안 심어서 손으로 하는 기여.”, “아니야!”. 한가롭고 조용한 안남면 도농리 황촌 논두렁, 조종수(59) 할아버지가 손자를 약 올리는 소리가 들린다. 대성이가 이앙기로 모심은 논이기 때문이다. 작년 할아버지께 조작 방법을 배운 뒤 계속 이앙기를 활용하다가 손으로 직접 심는 건 처음이다. 이앙기로 심기 어려운 구석은 사람이 논에 들어가서 직접 심어야 한다. 대성이는 가져온 장화로 갈아신고, “할아버지도 장화 신고 논에 같이 들어가자!”라고 재촉했다.

아홉 살 때부터 농사일을 돕고 농기계를 다룬 열한 살 소년 농부. 기계를 언제부터 만졌냐는 물음에 삼양초등학교 4학년 김대성 학생은, “언제부터 만졌지?”라고 할아버지에게 물었다. 조종수씨는 “굴착기는 한 2~3년 됐고, 이앙기는 작년부터 했어요. 애가 이앙기로 직접 모를 심어요. 굴착기는 조그만 거라서 면허가 필요 없어요.”라고 덧붙였다. 

이앙기를 논에서 모는 건 위험하다. 논둑이 높고, 조작 미숙으로 논 끝에서 멈추지 못해 사고가 날 수도 있다. 하지만 대성이는 한 번 알려주면 뭐든 잘한다. 대성이가 소야에 있는 할아버지 댁에서 이앙기를 몰고 오면, 할아버지가 모를 심는 식으로 농사일을 돕는다. 대성이는 할아버지랑 다니는 게 재밌다. 힘든 것도 있지만, 그냥 할아버지랑 하는 일이라 좋다. 

농사일이 항상 재밌고 쉬운 것은 아니다. 굴착기를 몰 때 덥기도 하고, 고구마나 감자 캐는 것도 힘든 일이다. 할아버지는 “이앙기 몰고 가다 모가 떨어지면 기계다가 다시 넣고 하는 게 대근하디야. 혼자 움직이니까 모도 혼자 넣어야 하잖아. 근데도 할아버지랑 하니까 좋디야”라며, “학교 끝나면 바로 논밭에 와요. 엄마한테 빨리 여기로 데려다 달라고 난리를 피워. 며느리가 고생이 많지”라고 말했다. 

대성이의 이동은 어머니가 책임지고 있다. 삼양초등학교서 여기까지 20km 거리다. 어머니는 대성이를 학교에 데려다주고, 다시 도농리에 와서 농사짓는다. 학교가 끝나면 할아버지의 논밭으로 데려오고. 저녁까지 같이 농사지은 뒤 대성이와 함께 읍에 있는 집으로 간다. 조종수 씨는 대성이가 안남초등학교를 다니면 되지 않냐는 물음에 “어차피 중학교는 읍으로 가야 하잖아요? 그런데 안남에서 다니면 중학교 올라갈 때 아는 애가 없잖아. 학교가 막 폐교된다는 얘기도 있고. 적응을 못 할까 봐. 며느리도 고생 많이 하지만 시골이 좋디야”라고 답했다. 

이렇게 대성이가 소야에 오면, 할아버지가 외진 데서 일해도 자전거를 타고 달려가 항상 찾아낸다. 할아버지가 낸 바퀴 자국을 보고 따라가기 때문이다. 그렇게 이것저것 다 배웠다. 관리기로 피복도 하고, 트랙터도 할 줄 안다, 콤바인은 잘 뒤집혀서 위험하지만, 올해 가을에 가르칠까 생각하고 있다. 대성이는 바로 콤바인은 몰기 싫다고 답한다. 콤바인이나 트랙터는 클러치에 발이 잘 안 닿아 껄끄럽기 때문이다. 키가 더 큰 뒤 할아버지가 가르쳐주면 배울 생각이 있다고 했다.

어린 시절 농기계를 집에서 다 직접 고치는 할아버지를 보고, 대성이는 알게 모르게 옆에 와서 연장을 만지고 손에 기름을 묻히곤 했다. 계속 그를 따라다니다가 “할아버지 내가 한번 해 볼까?”라고 말했다. 할아버지가 한번 해보라고 말한 게 지금에 이른 것이다. “관리기로 피복 하는 건 뒤로 걸으면서 해야 하니까 되게 위험해요. 애 엄마도 위험하다고 그래요. 근데 애는 하고 싶어서 계속하고 있어요.”

대성이는 농부가 꿈이다. 좋아하는 밥을 위해서라도 농사를 짓겠다는 생각이다. 조종수 씨는 “한 해 동안 먹을 쌀을 40kg짜리 몇십 포대 저장해요. 그럴 때 애가 “할아버지! 내가 밥 많이 먹으니까 더 쌓자.” 이래요.”라고 웃으면서 말했다. 대성이는 여기 살면서 이것저것 다 농사짓고 싶고, 친구들을 여기에 초대하고 싶다. 친구네 엄마는 허락하는데, 엄마가 허락하지 않는단다. 할아버지가 ‘친구들은 여기서 뭐 하려고? 논둑에 가만히 앉아서 구경만 하지.’라고 약 올리면, 대성이는 “친구들 일 시키면 되죠! 걔들이 모판 주면 되지”라고 말한다.

할아버지는 “친구들이 모판을 어떻게 주냐! 힘들어서 못 나르지”라고 말하고, 대성이는 조용히 장화를 신고 물에 잠긴 논바닥을 밟는다. 다닥다닥 붙은 모 뭉치에서 한 손으로 잡을 정도만 적당히 떼어, 논바닥에 박아 심는다. 처음 하는 데도 능숙한 모습이다. 장난스레 아빠가 좋냐, 할아버지가 좋냐고 물었다. “아빠보다 할아버지가 더 좋아”, “아빠보다 더 좋으면 어떡해, 인마!”

사진제공: 월간 옥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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