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파트 7곳 분리수거장의 게이트 키퍼가 되다
아파트 7곳 분리수거장의 게이트 키퍼가 되다
공동주택 담당 자원관리도우미 강대식(68)·신주철(70)씨를 만나다
자원관리도우미 11명, 공공·단독주택 분리수거장서 분리배출 방법 홍보
군 “면 단위에도 추가 배치 계획 중”
  • 박지원 인턴기자 webmaster@okcheoni.com
  • 승인 2021.10.29 1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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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원관리도우미 신주철, 강대식씨
자원관리도우미 신주철, 강대식씨

 

기름기가 묻은 피자 상자는 종이류에 배출할 수 있을까? 지난 18일, 마암리 양우내안애아파트 분리수거장에서 만난 강대식(68, 읍 금구리), 신주철(70, 읍 금구리)씨는 “안 된다”고 단호히 말한다. “기름 묻은 건 재활용이 안 돼요. 일반쓰레기에 버려야 해요.”

아파트 주민도 아니고, 경비원이나 관리사무소 직원도 아니다. 그럼에도 매주 월요일 오후 1시면 이곳에 나타나 분리수거장 앞을 떠나지 않는다. 분리배출 하러 나온 주민을 돕거나 직접 쓰레기를 분류하기도 한다. 벌써 5개월째다.

이들은 환경부의 ‘재활용품 품질개선 지원사업’으로 공동·단독주택의 분리수거장에 배치된 자원관리도우미다. 읍내 공동주택 4명, 단독주택 7명 등 총 11명이 올해 6월1일부터 오는 11월19일까지 근무한다. 주민들에게 올바른 생활폐기물 분리배출 방법을 안내하고 홍보하며 필요시 재활용품 선별 작업도 한다. 이를 위해 3억3천280만원(국비 2억9천952만원·군비 3천328만원)의 예산이 편성됐다.

주민에게 분리배출 방법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주민에게 분리배출 방법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분리를 잘 해주셨네요. 앞으로도 잘 부탁드립니다.” 점심시간이 조금 지난 시각, 양손에 쓰레기를 들고 온 주민에게 신씨가 격려의 말을 건넸다. 5분도 되지 않는 짧은 시간 동안 주민이 분리배출을 하고 떠나자 강씨와 신씨가 다시 쓰레기를 살펴본다. 플라스틱 수거함에 버려진 커피우유 컵을 꺼내자 안쪽에 가득 담긴 담배꽁초가 보인다. “이렇게 담배꽁초를 넣어두면 재활용이 안 돼요.” 매의 눈으로 작은 쓰레기도 놓치지 않는다. 이번에는 요구르트병을 집어 들어 알루미늄 뚜껑을 제거한다.

가장 분리배출이 잘 되지 않는 쓰레기는 택배 상자다. “운송장 스티커와 테이프를 떼야 하는데 그냥 버려요. 개인정보도 있는데 안 떼더라고요.” 택배 상자 더미 앞에서 일일이 커터칼로 운송장 스티커와 테이프를 제거하고 있지만 온종일 여기에 매여 있을 수 없는 노릇이다. “개개인이 하는 건 쉬워도 모아놓으면 다 처리하기 힘들어요. 주민 분들이 스스로 해주셔야 합니다.”

공동주택에 배치된 강씨와 신씨는 주중 매일 다른 아파트를 방문한다. △마암리 현대아파트 △마암리 양우내안애아파트 △문정리 문정주공3단지아파트 △문정리 하늘빛아파트 △죽향리 옥향아파트 △장야리 더퍼스트이안아파트 △죽향리 향수마을아파트를 차례로 순회한다. 여러 곳을 돌다 보니 자연스레 아파트끼리 비교가 된다. 이장까지 나서 주민들이 잘 협조하는 곳이 있는가 하면 아무리 말을 해도 달라지지 않는 곳도 있다. “앞에서만 알겠다고 하고 뒤돌면 똑같아요. 귀찮거든요. 어떤 주민은 음식물 쓰레기를 플라스틱에 버리기도 하고, 어떤 주민은 분리도 안 한 쓰레기를 까만 봉지에 담아 던지고 가는 경우도 있어요. 그럼 우리가 그 봉지 열어서 분리배출 하는 거예요.” 아파트마다 비가림막이 없는 분리수거장도 있어 비 오는 날에는 고무장갑을 끼고 일을 해야 한다. “비가 오면 종이고 뭐고 다 젖어요. 그래서 비 오는 날이 싫죠.”

주민들에게 욕이라도 듣는 날이면 밤잠을 설친다. “잘 때도 안 잊히고 내가 왜 이 일을 하는가 그런 생각이 들어요.” 관리사무소에 주민이 신고를 한 일도 있었다. “박스를 접어서 버려달라고 부탁드렸더니 아저씨들이 뭔데 이래라 저래라 하느냐 이거죠. 불편해도 주민들이 불편할 거니까 관여하지 말라고 하더니 신고를 하더라고요. 우리는 피해주려고 하는 게 아닌데…” 일 자체보다 주민들의 차가운 반응이 더 힘들다. 여름에는 무더위를 잠시 피하려고 경로당에 들어갔다가 “코로나 시대에 어디 들어오느냐”는 냉정한 소리를 들었다. 결국 나무 아래서 햇빛만 겨우 피해야 했다.

강씨와 신씨 모두 1년 전만 해도 분리배출 전문가가 될 줄은 상상도 하지 못했다. 강씨는 피아노 학원을 운영하다 코로나19 영향으로 폐업을 했고, 이후 낚시터에서 매점 등 시설을 관리하는 야간 근무를 했다. 신씨는 기능성 신발을 제작하는 일을 하다 그만둔 상태였다. “이 일이 좋아서 한 것도 아니고 마냥 놀 수 없으니 지원한 거예요.”
환경에 특별히 관심이 있었던 건 아니었지만 일을 시작하고 마음가짐이 달라졌다.

분리배출·수거에 대한 뉴스를 챙겨보고, 정부에서 제작한 ‘내 손안의 분리배출’ 어플리케이션을 통해 틈틈이 분리배출 방법을 공부한다. 강씨는 투명 페트병 수거에 대해 지적했다. 지난해 12월25일부터 공동주택은 투명 페트병을 별도 분리수거함에 넣어야 한다. “이렇게 투명 페트병을 따로 버려도 수거업체가 일반 페트병과 섞어서 한 번에 가져가요. 업체도 고충이 있죠. 투명 페트병 분리수거에 대한 환경부 지원이 있어야 하는데 이익이 남지 않으니 안 하는 거예요.” 신씨는 우리지역의 분리배출 방법에 대해서 쓴소리를 했다. “비닐 버리는 데가 있어야 하는데 없어요. 음식물 쓰레기도 그렇고요. 다른 지역은 아니거든요. 말이 안 되는 거죠.” 단독주택 거주자로서 단독주택의 분리배출 문제는 더욱 심각하다고도 입을 모았다. “아파트보다 더 심각해요. 주택은 대부분 분리수거장이 없잖아요. 분리배출 없이 종량제 봉투에 쓰레기를 모아 버리니까요.”

이들은 마지막까지 주민들에게 올바른 분리배출에 관심을 가져주길 당부했다. 신씨는 “요즘 두세 명만 모여도 화두가 환경 문제인데 당장 일상에서 환경을 보호하는 실천을 해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강씨는 “주민들이 자발적으로 하지 않고는 우리 힘으론 아무리 해도 부족하다”며 “주민 분들이 스스로 잘 해주시면 좋겠다”고 전했다.

한편 이달 중으로 면 단위에도 자원관리도우미가 배치될 예정이다. 환경과 자원순환팀 김호성 팀장은 “남은 예산으로 최대한 10월 중 자원관리도우미를 추가로 뽑아 한 달 동안 마을회관을 돌아다니며 분리배출 방법에 대해 홍보할 것”이라고 말했다. 내년 자원관리도우미에 대한 계획은 아직 미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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