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대가 절망하면/ 이렇게 대답했죠/ 바다를 보내주는/사람이 있다구요”
21살이 되던 해에 “인생의 젊은 시간들은 도시에서 보내야지”라고 생각을 했다. 도시에서만 느낄 수 있는 화려함이 참 좋았고 도시의 북적임이 참 좋았다. 그래서 미련이 없이 서울로 향했다.
시작은 참 좋았다. 좋았던 것보다도 신기했다. 아무리 시간이 흘러도 꺼지지 않는 조명들과 온갖 문화생활, 빼곡한 노선의 지하철과 늘 바삐 움직이는 사람들의 모습, 나는 “이것이야말로 내가 그리던 도시의 삶이구나”라는 생각을 했다.
그러나 막상 20대의 대부분을 서울에서 살아보니 점점 숨이 가쁘기 시작했다. 그것보다도 늘 불안했다. 매달 내야 하는 월세와 언제나 부족한 생활비에 쪼들려 지내기를 몇 날 며칠. 내가 원하던 꿈과 목표가 점점 멀어지는 삶의 패턴이 그간 그려오던 도시에서의 멋진 삶과는 조금씩 멀어지게 했다. 그러다 어느 날, 문득 “나는 바다에 가고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회색 하늘, 탁한 공기에서 벗어나 바다로 향해야겠다고.
생각해보면 도시만큼이나 원했던 삶은 ‘바다를 보는 삶’이었던 것 같다. 탁 트인 수평선과 그 너머로 지는 노을을 보고 있자면 온종일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행복할 것 같았다. 그리고 요란하지 않은 바다의 소리를 듣기만 해도 좋겠다는 생각도 종종 했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가만히…
도시에서의 삶은 늘 무언가를 해야만 하는 삶이었다. 그리고 늘 이성적으로 상황을 직면해야겠다고 생각을 했다. 내가 들어야 하는 것들만 듣고, 늘 경쟁을 했다. 그게 나에게는 제 나름대로 터득한 방식이라 합리화를 하기도 했다.
언젠가 왠지 모를 열등감에 쫓겨가며 늦은 밤 도서관의 불이 다 꺼질 때까지 남아야 했던 대학생활을 돌이켜 보니, 무엇 하나 제대로 이룬 게 없는 것 같은 나의 모습이 참으로 부끄러웠다.
그리고 포부와는 다르게 늘 꽈락을 받아왔던 나의 이력서를 다시금 꺼내보며 도시에서의 내 모습은 너무나 보잘 것이 없다는 생각을 하기도 했다. 그런 생각이 들 때면 나는 종종 한적한 바다를 보고싶었다.
그때면 나는 <바다를 보내주는 사람>이라는 이 노래를 통해 바다를 들었다. 지금도 종종 이 노래를 듣는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정말 바다를 갈 일이 생겨 훌쩍 바다로 떠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