짚풀로 한땀 한땀 전통과 미래를 여미다
짚풀로 한땀 한땀 전통과 미래를 여미다
지난달 13~18일 전통문화체험관서 짚풀공예 전시 열려
짚풀공예가 이준희 씨, 짚풀·왕골·사초로 옛 생활용품 구현
동이면 평산리 출신···2년 전 고향 평산리 집에 돌아와
부모님과 육남매가 어울렁더울렁 함께 살던 이야기
  • 윤종훈 기자 yoonjh2377@gmail.com
  • 승인 2023.01.04 0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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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꼬 보러 갈 사람?’ 여름만 되면 아버지가 이른 새벽 4시에 마당에서 부른다. 누구라고 할 것도 없었다. 6남매 중 막내딸이 자동으로 튀어 나간다. 지금은 수로가 다 돼 있지만 옛날에는 윗논에서 아랫논으로 물을 받았다. 저수지에서 내려온 물이 윗논에 차면 아랫논에 물길을 텄다. 논에 물이 너무 많거나 적을 때를 대비해 주변을 살피러 다녔다.

아버지와 손 붙잡고 논둑길을 걷던 옛 시절, 어느 순간 그리움이 됐다. 모가 사람 키만큼 자랄 때 바람이 살랑살랑 부는 풍경. 그 상쾌함은 아침에 걸어본 사람만이 안다. 고향이 그리웠을까. 정말 오고 싶었다. 고향 오는 데 오랜 시간이 걸렸다. 이제야 돌아왔다. 기나긴 시간이 걸린 만큼 기쁨도 컸다.

지난 12월13일부터 18일까지 옥천전통문화체험관에서 짚풀공예가로 활동하는 이준희(59, 동이면 평산리) 씨 개인전이 열렸다. 주제는 <짚과 풀로 여미다>. 짚풀과 왕골, 사초 등을 이용해 우리 조상들이 일상생활에 쓰던 생활용품을 전통과 창작 사이를 오가며 구현해냈다.

지난달 13~18일 옥천전통문화체험관에서 '짚과 풀을 여미다'는 주제로 짚풀공예 전시가 열렸다. 이번 전시는 짚풀공예가 이준희 씨가 만든 작품들을 선보였다. 
지난달 13~18일 옥천전통문화체험관에서 '짚과 풀을 여미다'는 주제로 짚풀공예 전시가 열렸다. 이번 전시는 짚풀공예가 이준희 씨가 만든 작품들을 선보였다. 
짚풀로 만든 바구니, 짚신, 의상 등 다양한 공예품들이 놓여 있다.
짚풀로 만든 바구니, 짚신, 의상 등 다양한 공예품들이 놓여 있다.
짚풀로 만든 돗자리, 소입마개, 빗자루, 소품걸이 등이 진열돼 있다.
짚풀로 만든 돗자리, 소입마개, 빗자루, 소품걸이 등이 진열돼 있다.

짚풀로 만든 의복부터 짚신, 항아리, 소입마개, 빗자루, 쌀단지, 장구, 소품걸이 등 어르신들에게는 추억거리, 젊은 세대에게는 우리 전통문화의 아름다움을 선사했다. 이준희 씨는 지난해 3월23일부터 5월8일까지 우리고장에서 짚풀공예를 하는 양해용 씨와 함께 전통문화체험관에서 전시한 바 있다.

■ 짚풀공예, 손에 놓을 수 없는 것

“옛날 생활용품으로 쓰던 물품들이잖아요. 똬리는 집에서 못 만드는 사람이 없을 정도였으니까요. ‘여미다’는 말은 정돈했다는 의미예요. 짚과 풀이 막 흩어져 있잖아요. 손으로 직접 새끼를 꼬고 작품을 만들어서 여미다는 단어가 어울리겠다 싶었죠.”

이준희 씨는 동이면 평산리가 고향이다. 동이초 36회, 동이중 6회, 옥천여고를 졸업한 그는 타지 생활을 하다 고향에 오고 싶은 마음에 2013년부터 옥천에 올 준비를 했다. 그로부터 8년이 지난 2021년 9월 고조, 증조, 할아버지, 아버지가 대대로 살던 평산리 집에 돌아왔다. “정말 운이 좋았던 사람”이라고 웃으며 말하는 그의 얼굴에 동심을 간직한 어른의 모습이 보였다.

“옥천에 오니까 이렇게 아름다운 곳이구나, 가볼 곳이 참 많구나 싶어요. 어릴 때는 교통이 좋지 않아서 어디를 가볼 수 없잖아요. 이제야 구석구석 가보니까 옥천에 많은 문화재가 있고, 가볼 곳이 많다는 걸 알았죠. 제가 옥천 홍보대사예요. 만나는 분마다 옥천을 많이 알리거든요. 가식적인 게 아니라 우러나온 마음이에요. 요즘 들어 옥천에 태어나서 자랐다는 게 굉장히 좋다는 생각을 참 많이 하네요.”

짚풀공예가 이준희 씨가 3개월 간 공들여 제작한 짚풀 재질 의상 옆에 서서 기념촬영을 했다. 그는 평산리 인근에서 벼농사를 지어 나온 짚풀을 이용해 작품을 만들었다.
짚풀공예가 이준희 씨가 3개월 간 공들여 제작한 짚풀 재질 의상 옆에 서서 기념촬영을 했다. 그는 평산리 인근에서 벼농사를 지어 나온 짚풀을 이용해 작품을 만들었다.

이야기를 나누면서 그에게 옥천만큼이나 짚풀을 향한 진한 애정을 느낄 수 있었다. ‘짚풀은 절대 놓을 수 없는 것 중 하나’라는 말을 은연중에 자주 꺼냈다. 그는 지인을 통해 짚풀로 계란꾸러미를 만들었던 체험을 계기로 짚풀공예 매력에 빠졌다. 그때가 2016년, 짚풀공예와 연을 이은 지 어느덧 7년이라는 세월이 흘렀다. 충남 아산에 있는 이충경 씨를 비롯해 서정희 허윤도 김주원 씨 등 여러 선생님에게 먼 거리를 마다하지 않고 찾아가 배웠다.

■ 갓 지은 밥 향이 추억을 자극하다

이번 짚풀공예 전시가 더 특별하게 다가온 것은 그가 평산리에서 직접 농사지어 나온 짚풀을 재료로 썼기 때문. 남편과 함께 벼농사한 지 3~4년차. 짚풀공예하는 사람 중 본인이 직접 농사지은 짚풀을 쓰는 사람이 0.1%도 안 될 거라고 그는 말한다. “한 번 가까이서 냄새를 맡아보세요.” 코를 가까이 대자 공예품에서 밭 냄새, 갓 지은 밥 향이 난다.

“제 좌우명이 ‘미치지 않으면 미치지 못한다’예요. 저는 재미없는 일은 바로 그만두거든요. 이게 재밌다고 하면 빠져요. 얼마 전 옥천FM공동체라디오에서 아자학교 고갑준 선생님과 인터뷰할 때도 그 얘기 했거든요. 미치지 않으면 미치지 못한다. 정말 좋아서도 미치고요. 그 일에 저처럼 빠져서 사는 사람이 있을까, 그 생각이 들 정도로요.”

이준희 씨가 관람객에게 짚풀로 엮어서 만든 작품을 하나하나 설명하고 있다.
이준희 씨가 관람객에게 짚풀로 엮어서 만든 작품을 하나하나 설명하고 있다.

전시 도록을 보면 그의 이름 옆에 ‘명인’이라는 칭호가 붙어 있었다. 알고 보니 2021년 한국문화예술명인회에서 짚풀공예 명인 4호로 선정된 것. 명인 1호는 그가 선생님이라 부르며 존경하는 짚풀공예가 이충경 씨다.

때론 느슨하게, 때론 힘 있게. 바른 자세로 허리를 펴고 앉아 완급을 조절하며 새끼를 꼬는 게 중요하다는 이준희 씨. 명인이라는 호칭 때문이 아니라 어느 한 분야에 깊게 빠진 한 예술가의 집념과 열정이 하나하나 작품을 설명하는 과정에서 고스란히 전해져 온다.

■ 닭 지키라 했더니 친구 집 놀러간 막내딸

공예품 하나하나에 짚풀에 담긴 조상들의 삶과 숨결이 느껴진다. 지구온난화, 플라스틱 남용 등 환경 문제가 거론되는 현시대에 짚풀공예가 갖는 가치 또한 시사하는 바가 크다. 그는 전통문화를 좋아해 처음엔 인성·예절 강사를 했다. 여기에 즐거움을 가미할 방법을 찾다 전래놀이를 배우면서 대전놀자학교를 차렸다. 그는 교장으로 있으면서 전래놀이 수업을 했는데 짚풀공예로 관심 분야를 옮겨와 대전 선화동에서 우리전통문화체험원이라는 이름의 공방을 운영하고 있다.

현재 옥천작가회의, 옥천향토사연구회 회원으로도 활동하는 이준희 씨. 옥천을 이야기할 때 돌아가신 부모님과 살았던 옛 시절이 머릿속에 스쳐 지나간다. 별 이불을 덮고 잔 소중한 추억이 새록새록 떠오른다.

“아버지 옆에 있으면 유쾌했어요. 저는 막내딸이니까 엄청 예뻐했거든요. 우리 아버지는 술을 드시고 오면 꼭 엄마까지 다 들어오라고 해요. 그러면 ‘팥죽할머니와 호랑이’ 얘기를 해주는 거예요. 그 옛날이야기를요.”

아버지 같은 사람이 이 세상에 또 있을까. 어제까지만 해도 정답고 농담도 잘 하는 아버지였는데 혼낼 땐 눈물 쏙 빠지게 혼냈다. 교육적으로 혼내야 할 때, 칭찬해야 할 때를 잘 구분하던 아버지, 우리 6남매 모두가 아버지 같은 사람이 또 있을까 입을 모은다.

“아버지가 점쟁인 줄 알았어요. 막내다 보니 아버지, 어머니, 저 이렇게 잠을 자잖아요. 저녁 되면 아버지가 맥을 짚어요. 짚으면서 네가 하루 동안 뭐 했는지 다 보인데요. 진짜 그런 줄 알았죠. 오늘은 뭐 했고, 뭐 했고, 줄줄 읊으세요. 진짜인가 싶어서 ‘내가 뭐 잘못했나’ 반성도 했고요. 나중에 알고 보니 엄마가 고자질한 거예요.”

아버지가 부드러운 심성의 사람이라면, 엄마는 반대로 강인한 사람이었다. 초등학교까지 졸업한 엄마는 늘 신문을 보고 계셨다. 그 어렵던 한자, 한글을 엄마에게 다 배웠다. 공부를 하셨다면 엄청 잘하시지 않았을까. 늘 밭에서 일하던 우리 엄마. “너희 집은 딸 부자, 일 부자여.” 동네 아주머니가 한 이야기다. 이 밭 매고, 저 밭 매고, 다시 오면 풀이 또 자라 있고···. 우리 6남매는 모두 일꾼이었다. 조금만 거들면 엄마가 덜 힘들다는 생각에 악착같이 일했다. 

옛 집터 모습을 재현해 모형으로 만들었다. 
옛 집터 모습을 재현해 모형으로 만들었다. 
크기도 색깔도 제각각인 쌀 단지. 이준희 씨는 쌀 단지를 보며 '우리 6남매의 젖줄'이었다고 말했다.
크기도 색깔도 제각각인 쌀 단지. 이준희 씨는 쌀 단지를 보며 '우리 6남매의 젖줄'이었다고 말했다.

“엄마는 꼭 나락(벼)을 널어놓고 닭을 지키라 했어요. 근데 저는 한 번도 끝까지 지켜본 적이 없어요. 나가서 놀아야 했어요. 저녁에 오면 엄마가 부지깽이 들고 저를 보자마자 막 때리려고 쫓아와요. 닭이 다 밖으로 흩어졌으니까요. 그러나 제가 안 잡히죠. 삼십육계 줄행랑. 어디로 가냐 하면 동네에 TV 있는 집이 몇 집 없었어요. TV 있는 친구 집에 가서 한참 보다가 집으로 들어왔죠.”

■ 짚풀을 편안히 만지는 공간 있었으면

옥천에서 처음으로 개인전을 연 것만으로 감사하다는 이준희 씨. 일상에서 잠시 잊고 지낸 짚풀을 보고 만지면서 편안하게 즐겼으면 하는 작은 바람을 전했다. 짚풀공예를 전수할 사람이, 함께 갈 수 있는 사람이 더 많아지길 바라는 마음도 내심 드러냈다.

“옥천은 농경문화를 바탕으로 지역이 형성됐잖아요. 그런데 짚풀공예 활성화는 잘 안 돼 있어서 아쉬워요. 논산이나 다른 지역은 훨씬 많거든요. 짚풀공예 강사를 찾느라 애쓰더라고요. 옥천에는 양해용 선생님도 있고, 저도 있고, 두 사람이 있잖아요. 짚풀을 편안히 만질 수 있는 곳이 사실 옥천이면 더 좋죠.”

충남 아산에서 열린 짚풀런웨이 때 이준희 씨가 입었던 의상과 모자.
충남 아산에서 열린 짚풀런웨이 때 이준희 씨가 입었던 의상과 모자.
짚풀로 만든 조끼와 청자켓이 한데 어우러졌다.
짚풀로 만든 조끼와 청자켓이 한데 어우러졌다.

그는 충남 아산에서 열린 ‘짚풀런웨이’ 사례를 들어 옥천만의 특색 있는 행사를 열면 어떻겠냐는 제안도 했다. 짚풀런웨이는 짚풀을 소재로 의상과 소품을 직접 만들어 입고 우리 전통의 모습을 승화한 의상쇼를 말한다.

“1960~1970년대 지나면서 도시화, 산업화가 일어나고 짚풀공예 자리에 플라스틱이 대체됐잖아요. 몇십 년이 지난 뒤에 보니 플라스틱이 너무 많은 폐해가 있다는 걸 알았죠. 친환경, 탄소중립 이런 이야기가 다 우리 자연을 돌아봐야 한다는 추세에 있는 거잖아요. 동이면 평산리에 옛날 분들이 많으세요. 그분들이 새끼 다 꼬실 줄 알고 다 만들어 쓰던 생활용품이거든요. 아직 실행에 옮기진 못 했지만 저는 그런 생각도 했어요. 동네분들을 모시고 짚풀공예를 다 같이 만들고 판매까지 해보면 어떨까 싶어요. 옥천을 특색 있게 만들어가는 것도 옥천사람이 할 일이잖아요.”

이준희 씨가 짚풀로 만든 장구를 들고 기념촬영을 했다. 장구를 직접 칠 수는 없지만 보는 것만으로도 흥미를 끈다.
이준희 씨가 짚풀로 만든 장구를 들고 기념촬영을 했다. 장구를 쳐도 소리는 안 나지만 보는 것만으로도 신기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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