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집 특색 있다. 안남에서 수확한 들깨, 콩, 쌀을 쓰는 식당이다. 어디 사다 쓰지 않고 음식도 직접 다 한다. 건강한 지역음식을 선사하면서 지역경제 선순환에 이로운 구실까지. 이미 한 달 전부터 동네에선 ‘노식이네 칼국수’ 문 열었다며 소문이 금방 퍼졌단다. 안남은 집집마다 수저가 몇 개인지 다 알 정도라 하니 이 동네 주민 중에 이 집을 모르는 이는 거의 없을 터다. 주말엔 외지서 온 손님들도 찾는다는 식당, 여기는 칼국수전문점 ‘해와 달’이다.
지난달 4일부터 안남면 연주리에 개업한 ‘해와 달’은 말 그대로 칼국수를 전문으로 다루는 식당이다. 멸치 육수에 명태머리, 새우 등을 넣고 시원 칼칼하게 끓인 칼국수(7천원)부터 콩가루가 들어가 고소한 맛이 나는 들깨칼국수(9천원), 소고기를 볶아 고명으로 올린 고기칼국수(8천원) 세 가지 맛이 있다. 여기에 새싹채소, 상추, 당근, 적양배추, 김에 비빔장과 참기름을 넣어 자연의 맛이 담긴 비빔밥(8천원) 또한 인기다. 물만두(4천원), 미니족발(1만원)은 별미다.
식당에 들어서자 마치 카페를 떠올릴 만큼 깔끔한 인테리어가 돋보였다. 구석구석 아기자기한 소품과 그림, 화초들이 시선을 사로잡았다. 특이한 풍경도 보였다. 식당 매대 옆에 현재 창고 용도로 쓰는 철문으로 된 금고가 보였는데 알고 보니 개인이 하던 우체국 자리였다고. 지역에 유서 깊은 공간을 그대로 살린 셈이다. 꼼꼼한 인테리어 구성은 해와 달 송지숙(52, 안남면 종미리) 대표가 꾸몄다. 송 대표는 미산마을이 고향인 남편 전노식 씨와 함께 운영하고 있다.
■ 시골의 정이 있는 안남 칼국수집
“동네 분들은 다 아실 거예요. 처음엔 다들 궁금하니까 엄청 오셨죠. 한 번씩 다 잡숴보고 가셨어요. 단체로 오실 땐 동태찌개나 삼겹살도 해드려요. 메뉴판에 없어도 동네 분들이니까 하는 걸 다 아시거든요. 상호는 낮에도 밤에도 항상 열려있는 점포라는 뜻으로 지었는데요. 다들 예쁘다고 하시더라고요. 실은 ‘상인일기’라고 김연대 시인이 쓴 시를 읽었거든요. ‘하늘에 해가 없는 날이라 해도 나의 점포는 문이 열려있어야 한다’는 시 내용이 딱 떠오르더라고요.”
아침 7시30분에 나와 야채 씻고, 고기 볶고, 육수 끓이며 음식을 준비한다는 송지숙 대표. 그는 식당 장사가 처음이 아니었다. 대전 둔산동이 고향인 송 대표는 안남에 정착하기 전에 충남 논산에 있는 건양대 앞에서 한솥도시락을 7~8년 운영한 바 있다. 당시 대학생 손님들이 많았고, 단체 주문이 들어오면 하루 2~3시간 자고 새벽에 일어나 하루 몇백 개 음식을 포장했다. 하루도 쉬지 않고 일했던 그때와 비교하면 지금은 힘들지 않다고 돌아봤다.
더군다나 안남에 식당 하면서 주위에 도와주는 분들이 많다. 시골마을에 있는 사촌형님, 선희 강사님, 경숙 언니를 빼놓을 수 없다. 언제는 식당 일로 바쁜 모습을 보고 그다음 날 찾아와 '점심때만 잠깐 도와줄게' 하셨다. 설거지 해주고, 음식 날라주고. 돈을 드리려 하면 '형제끼리 이러면 못 도와준다'고 그러신다. 말로 다 설명할 수 없는 시골의 정이란 게 있다. 점심 바쁠 땐 신랑이 주방에서 칼국수 끓이는 걸 돕는다. 지역에 맡은 일도 많고, 소밥도 줘야 하건만 시장도 봐주고 점심시간 지나면 자기 볼일을 보러 간다.
■ 고된 삶에 찾아온 평화로운 안남
7년 전 안남에 들어와 살게 된 사연이 있다. 하루도 안 쉬고 한솥도시락을 운영하다 그만두기 2~3년 전부터는 일요일에 쉬었다. 쉬는 날이 되면 신랑은 자기 고향인 미산마을을 꼭 찾았다. 토요일 저녁 안남에 가서 일요일 저녁에 논산으로 돌아오는 식이었다. 고향 친구들도 만날 겸 나름 힐링하는 시간을 가진 셈이다. 어느 날 그이가 고향에 가고 싶어 했다. 돈을 벌어야 하는데 어떻게 가냐며 처음엔 안 된다고 만류했다. 우연히 안남에 갔던 게 계기가 됐다.
“친구들 깻잎 따는데 한 번 가보자 하더라고요. 그래서 갔더니 정말 평화로운 거예요. 사람들이 다들 해맑고요. 막상 와보니까 어려운 점들이 보였죠. 사람 사는 게 그렇잖아요. 그때 당시에 저는 맨날 전쟁 같은 데서 밥도 서서 먹는 둥 마는 둥 했거든요. 근데 여기 동네 분들은 일 끝나고 식당가서 밥 먹고 커피를 마시더라고요. 시골이 이랬었나 싶었죠. 저렇게 사는 게 사람이 사는 건가 싶은 생각이 들 정도로요. 신랑한테 ‘괜찮을 것 같은데 가요’ 그랬죠.”
■ 자연이 살아 숨 쉬는 안남
스며들었다. 천천히 빠져들었다. 산과 강이 있고, 생태보존이 잘 되어 있는 안남이 어느 순간 익숙해지고 편해졌다. 이제 안남은 계속 살 고향이나 마찬가지다. 현재 생활개선회에도 참여할 만큼 지역사회에 녹아들었다. 지금은 두릅나무를 키우지만 안남면 청정리에 깻잎농사도 해보고, 옥천에 직장생활도 몇 년 했다. 그러다 팔이 안 좋아져 잠시 쉬는 시간을 가졌다. 마침 비어 있던 이 자리가 눈에 띄었고, 식당 경험이 있으니 한 번 해보자 해서 시작한 일이었다.
매주 화요일 금요일 저녁이 되면 안남면 다목적회관에 간다는 송지숙 대표. 그곳에서 회원 15명과 함께 줌바댄스를 한다. 거기서 총무직도 맡아 동네사람들과 즐겁게 지낸다고 한다. 안남엔 한반도 지형을 닮은 등주봉(둔주봉)이 있다. 하늘 높이 떠서 둥실둥실하다는 뜻으로 ‘둥실봉’이라 부른 적도 있다는 등주봉. 주말 나들이 겸 가족과 함께 안남 등주봉 등산도 하고, 걸쭉한 칼국수 한 그릇 맛보러 ‘해와 달’에 방문해보는 건 어떨까.
“저는 음식 조금 드리고 찝찝한 건 싫어요. 제 마음이 편하고 싶어서 아낌없이 주려고 하거든요. 예전에 도시락 할 땐 정량이란 게 있잖아요. 그렇게 해야 남으니까 어쩔 수 없었는데 좀 아니더라고요. 그래서 그때도 김치나 밑반찬은 무한 셀프로 주곤 했거든요. 그때 했던 버릇이 어디 안 가는 거죠. 김치나 콩나물 같은 밑반찬은 제가 직접 만들거든요. 안남에서 수확한 들깨, 콩, 쌀을 방앗간에서 사 와서 음식 만드니까요. 언제든 편하게 오셨으면 좋겠어요.”
주소: 안남면 연주길 34
전화: 010-2322-7727
영업시간: 오전10시~오후8시
매주 수요일 휴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