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부분 말씀하십니다. 요즘같이 연말연시 분위기가 없었던 적은 없었다고요. 언제 시작됐는지 이제는 익숙해진 장기불황에 한 치 앞을 내다보기 힘들다는 국내외 정치상황이 설상가상이니까요. 더구나 이제 석 달만 지나면 지역을 대표해 국가운영에 참여할 국회의원을 선출하는 총선을 치르지만 그 열기 역시 '아직'입니다. 그 이유야 여러 가지 있겠지만 출마예상자 중 어느 누구도 유권자들에게 '희망'의 메신저로는 아직 받아들여지지 않기 때문이겠죠. 그래도 묵은해는 가고 새 해가 오는 법, 저조한 분위기 탓하며 의기소침한 채 연말연시를 맞을 수는 없겠지요? 그래서 1년 365일 넘치는 에너지로 스스로를 충전하고 주위사람들에게까지 남은 힘을 전달하는 사람들을 찾아 나섰습니다. 그리고 만난 두 사람, 옥천성당 김인국 주임신부와 오한흥 전 옥천신문 대표입니다. 기자는 마침 군청 입구에서 열린 안내면 양계장 반대집회를 소재로 의미심장한 대화를 나누고 있는 두 사람 사이로 불쑥 끼어들었습니다. |
시끌벅적해야 좋은 동네
오한흥 : 사실 옥천은 아주 오랫동안 뚜렷한 활동이 없는 지역이었어요. 주민들이 이건 잘못됐다, 이건 고쳐 달라 하면서 요구하고, 떠들기 시작한 것이 옥천신문 생기고 나서라고 보면 되니까 얼마 안 된거죠. 그런데 2011년은 그나마 시끌벅적했던 최근의 흐름에서 보면 나름 조용하게 보낸 한 해였어요. 물론 오늘 군청입구는 시끌벅적하지만……. 사람들이 자기요구를 이야기하면서 떠들어야 변화도 있고 발전도 하는 좋은 동네가 되지 않겠어요? 사람 사는 곳은 시끌벅적해야 좋아요(웃음).
기자 : 아무래도 김영만 군수가 이끄는 민선5기가 지난해 6개월 준비운동하고 올해부터 본격적으로 활동을 시작한 해니까, 차분하게 지켜본 것 아닐까요? 최근에 발표된 청렴도 평가도 예년보다 높게 나왔고.
오한흥 : 일을 하면서 깨끗한 것하고 그냥 깨끗하기만 한 것은 다르죠. 적지 않은 주민들이 김 군수에게 실망을 느끼는 이유는 뭘 못한다는 것 보다 군정에 대해 이야기 할 것이 없다는 것 아닌가 싶어요. 보은군수와 옥천군수를 비교하고, 심지어는 범죄를 저질러 감옥에 있는 전 군수가 지금 군수보다 낫다는 이야기까지 나오는 것은 정말 문제죠. 그런데 이런 지적들은 김 군수가 표방한 주민자치 1번지가 실질적으로 틀을 갖췄으면 나올 수 없는 이야기들이거든요. 온갖 위원회다 뭐다 형식만 갖춰놓고, 내용은 거꾸로 가니까 욕을 먹는 겁니다. 박원순 서울시장이 실천하고 있지만 주민참여는 시장, 군수가 좇아가서 듣는 거지 할 말 있는 놈 나와서 해라가 아니거든요. 자기얘기만 하고 듣지도 않잖아요. 사실 김 군수는 유권자들의 동정심을 자극해서 당선된 측면이 커요. 뭘 하겠다거나 할 수 있어서라기보다는 군수 선거를 코앞에 두고 재선이 확실했던 군수가 감옥엘 가면서 당선되는 행운을 얻었죠. 준비가 안된 측면이 있는데 덜컥 당선되고, 거기다 주민자치1번지라는 심오한 공약까지 했으니(웃음).
지속가능한 삶, 추구해야
김인국 : 지역정치사정은 잘 모르지만 장사하시는 분들 불만은 직접 접했네요. 어떤 가게를 갔더니 주인양반이 전 군수와 지금 군수를 비교하시더군요. 시장이 불황이고 안 돌아가는데 청렴이 뭐 대수냐 라는 입장이셨죠. 이웃 군수와 비교도 하시고. 그런데 문득그 이야기를 들으면서 시장의 욕구를 채워주는 군수가 좋은 군수인가 하는 생각이 들더군요. 생각 해 보자고요. 신문을 통해 봤지만 김 군수가 대청호에 배를 띄우고 멀쩡한 산을 파헤쳐 골프장을 만든다는 입장을 갖고 있는 것은 전형적으로 자연을 파괴하고 후손에게 물려줘야할 가치를 훼손해서 시장의 욕구를 채워주겠다는 의지거든요. 그런데 이미 우리는 이명박 정부를 통해서 이런 정책들이 주민들의 삶을 살찌우기는커녕 파괴한다는 것을 배웠어요. 지속가능한 개발, 공존을 보장하는 정책이 아니고는 대안이 될 수 없다는 것을 알잖아요?
기자 : 정리해보면 지난 한 해는 주민들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파악하는데 실패한 해로 평가할 수 있겠네요.
김인국 : 김영만 군수의 실패는 결국 주민의 실패에요. 그러니까 실패하면 안되겠죠. 성공할 수 있도록 주민들이 최선을 다해서 도와야죠(웃음). 저는 군수에게 지역 밖에서 뭔가를 해 와라, 기업을 유치하고 사업을 유치하라는 요구를 주민들이 하면 할수록 아까 얘기한 유람선이니 골프장이니 하는 황당한 결과들이 나온다고 생각해요. 차라리 옥천군 예산을 얼마나 알뜰하게 주민들의 삶을 위해 쓸 것인가, 우리지역의 돈이 도시로 유출되지 않고 지역에서 돌면서 살림을 풍요롭게 할 것인가를 주민이 함께 고민하는 쪽이 더 현명할 수 있다고 봐요. 마을이 살아야 나라가 산다는 관점에서 지역화폐도 고민해보고 주민들이 서로서로 팔아주는 협동도 생각해 봐야죠. 사실 단체장에 대한 평가를 이러쿵저러쿵 해봐야 큰 의미는 없어요. 진정한 대화의 상대는 군수가 아니라 주민과 주민, 동네사람들이거든요. 실망하고 있는 이웃들에게 '아냐, 이렇게 살면 얼마나 재미있어'라고 희망의 메시지를 던질 수 있어야 해요. 우리 스스로 희망의 문고리를 찾아서 닫힌 마음의 문을 열 때 비로소 변하죠. 문제는 상상력의 빈곤이에요.
오한흥 : 결국 무엇을 할 것인가는 행정과 주민과의 소통에서 나와야 한다는 말이죠. 옥천군정에 빈 부분이 있으면 내가 채우면 되요. 내가 먼저 채우면 누군가 또 자기 역할 만큼 채우고.
누가되든 지켜야 할 약속 받자
기자 : 새해 많은 일들이 있겠지만 국회의원과 대통령 선거는 주민들 공통의 관심사 중에서는 1순위겠죠. 그런데 당장 코앞으로 다가온 국회의원 선거에 대한 유권자들 관심은 예전만 못한 것 같습니다.
오한흥 : 정치적 무관심은 잘못된 것이지만 이번처럼 찍으려야 찍을 사람 없는 선거는 오히려 유권자들이 전국 최저투표율을 보여줘서 지역 정치인들에게 경고를 보낼 필요도 있는 것 같아요.
김인국 : 찍을 사람이 없을 때는 누가 되더라도 최소한 국회의원으로 해야 할 약속들을 주민들이 얻어내는 것이 중요하지 않을까요? 당선되면 한미FTA에 대해 무엇을 할지, 4대강 사업에 대해서는 국회의원으로서 무엇을 할지를 약속받아야죠. 그래서 며칠 전 성탄절을 앞두고는 옥천성당에서 최병성 목사님(편집자주. 최병성 목사는 환경운동가이자 생태교육가로 최근에는 4대강의 문제점을 고발하는 저술과 강연으로 널리 알려진 인물)을 초청해 신도들과 공부도 같이하고 토론도 했지요. 그 자리에 군수, 도의원, 국회의원출마예상자들도 초청해서 생각들도 들어봤어요. 한미FTA나 4대강 사업 모두 천주교 사회교리에 어긋나는 일들이거든요.
기자 : 2012년은 어찌됐든 옛것과 새것들이 그 자리를 바꾸는 해가 됐으면 좋겠습니다. 그래도 안타까운 것은 팍팍한 서민들의 삶인데요, 용기를 가져야겠죠?
김인국 : 고난에는 값이 있고 즐거움에는 맛이 있다고 하죠. 괴로울 때 그 괴로움을 달게 받아야 하는 이유는 거기에는 반드시 값이 있기 때문이고, 그래야 나중에 즐거움의 맛을 알 수 있기 때문입니다. 사람은 고난의 값을 치르면서 동시에 차분한 성찰을 하게 되고 영혼이 정화되죠. 하지만 점점 더 성찰하지 못하는 사람들, 스스로 잠도 못 들고 잠들지 못하기 때문에 눈뜨지도 못하는 사람들이 많아지는 것 같습니다. 충동과 무의식, 즉흥적 감정에 의지하는 삶이 아니라 타인의 아픔에 대한 상상력과 공감능력을 갖고 사는 삶이 바로 신앙의 삶이에요. 저는 한미FTA를 처리하는 국회의 모습을 보고 여러 가지 생각을 했어요. 촌사람들, 장사하는 사람들 할 것 없이 벼랑 끝으로 몰리는 정말 큰 위기지요. 그런데 이 위기를 단순히 경제위기가 아니라 문명의 위기로 받아들이는 성찰의 계기가 되었으면 합니다. 그래서 저는 성찰과 함께 맞는 새해를 당부 드립니다. 먹고 살 걱정 없는 신부의 배부른 소리라고 하실 지도 모르겠지만요(웃음).
오한흥 : 일단 새해에는 무슨 일이든 거창하게 시작해야 한다는 부담부터 버렸으면 좋겠습니다. 그 부담 때문에 작지만 나 혼자서라도 실천할 수 있는 작은 시도들이 너무도 많이 포기되는 것 같아요. 일단 저 부터라도 새해에는 나 혼자 가볍게 실천할 수 있는 일들을 찾겠습니다. 새해에는 이렇게 실천할 수 있는 사람들이 한 사람, 한 사람 늘기를 기대할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