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산만세운동주역 명예 되찾아
청산만세운동주역 명예 되찾아
  • 옥천신문 webmaster@okinews.com
  • 승인 1993.01.30 00:00
  • 호수 1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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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3·1절을 기해 1919년 청산독립만세운동의 주역 4명에 대한 독립유공자 추서가 확실시되고 있어 후손들은 물론 주위사람들을 기쁘게 하고 있다.
이번에 새로이 독립유공자로 추서되는 열사는 당시 인정리에서 만세운동을 이끌었던 김한주(당시 44세·징역 1년3월) 열사를 비롯하여 안병하(당시 27세·백운리·징역 1년3월), 고한주(나이불명·백운리·징역 1년), 김지수(당시 41세·예곡리·태형 90)열사 등 4명으로 이들중 김한주, 안병하, 고한주 열사등 3명은 전국훈장 애족장을 , 김지수 열사는 대통령 표창을 받을 것으로 알려졌다.

지금까지 밝혀진 기록과 증언에 따르면 기미년 청산 독립만세운동은 김철수, 김인수, 김지수 열사 등이 중심이 된 예곡리 주민들과 김한주 열사가 중심이 된 인정·신매리 주민들이 면소재지에서 백운, 지전, 교평리 청장년과 합세 6백여명이 참가한 것으로 알려졌으며 이들중 5명이 만세운동 현장에서 순국하고 56명이 체포되어 12명이 형을 받은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에 따라 청산만세운동으로 독립유공자로 추서된 열사는 이미 김철수(상예곡리), 김인수(상예곡리), 박재호 열사 등 3명을 포함해 모두 7명으로 늘어났다. 이처럼 청산지역 독립운동 열사들이 거사 74년만에 빛을 보게 된 데에서 이들의 후손들을 일일이 찾아다니며 추서작업을 펼쳐온 이희복 군의회 부의장의 역할이 가장 컸다고 전해져 면민들의 칭송을 받고 있다.

그러나 이들 4명과 함께 독립유공자로 추서해줄 것을 신청했던 박동희(당시 23·백운리·태형 60), 안소석(당시41·지전리·징역 1년), 손일만(당시 21·지전리·태형 60)열사 등 3명은 각각 사망일 불명과 자료상 독립유공자 추서기준인 태형 90이상의 기준에 못미쳐 추서에서 제외된 것으로 알려져 후손 및 관계자들을 안타깝게 하고 있다.

한편 청산면내에서는 면민일동으로 3·1운동 애국지사 기념사업회를 조직하고 장학사업 등을 펼칠 계획을 갖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남편의 독립유공자 추서에 대한 소식을 전해들은 김한주 열사의 미망인 김진수(74) 여사와 맏아들 김익근(56·청산면 신매리 거주)씨등 가족들은 "늦었지만 명예를 되찾고 독립유공자로 추서되어 기쁘기 그지없다"며 "이희복 군의원과 주민여러분께 감사를 드린다"라고 기쁨을 표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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