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원면 지정리
이원면 지정리
자랑스런 우리마을
  • 옥천신문 webmaster@okinews.com
  • 승인 1995.08.19 11:07
  • 호수 2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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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원면 지정리



이원면 신훙리 철도 건널 목을 건너 지방도를 따라 개 심저수지까지 이르는 도로와 도로변은 글로 설명하지 않 아도 충분히 주민들에게 잘 알려진 길이다.

이 도로를 중심으로 양쪽 에 8개 마을이 제각각의 모 양을 갖추고 이루어져 있다.

지정리(池亭里)도 그중의 하나.

도로를 따라 개심리에 거 의 다다를 지점인 대성국교 앞에서 마울 이정표를 찾을 수 있으나 정작 지나치기 쉬 운 이정표에도 불구하고 멀 리서도 확연히 볼 수 있는 조선 소나무(재래종 소나무) 는 이 마을의 단정한 품격을 나타내주는 표상이라 해도 무방할 듯하다.

일제 침탈기름 지내며 그 혹독한 수탈을 감내하면[서도 아름답게 가꾸어온 소나무 숲은 일부 외지인들이 양산 송 호리 솔밭으로 오해하고 찾 아올 정도의 모양새를 갖춰 인근 뿐만 아니라 군내 어느 마을에서 찾기 힘든 명물로 간직할 만하다.

마을 이귀에 주로 형성된 이 소나무 숲은 그 지형상 옛부터 개심리 노루목 마을 과 연관해 재미있는 얘기가전해오는 곳이기도 하다.

노루목은 말그대로 노루의 목처럼 생겼다 하여 붙여진 지명인 바 지정리 마을 앞 야산에서 보면 마을 뒷산의 지형은 영낙없이 사자가 잔 뜩 웅크리고 누워있는 형상 이다.

이와 관련해 이원먼 개심 리 조종상(66)씨는 노루목의 노루가 개심리에서 흘러내린 이원천에 물을 먹으러 내려 왔는데 물 건너편에서 사자 노루목의 노루 노리는사자 형상 지형야산을 올라가지 않고 도로

쪽에서 보더라도 이 소나무 숲은 사자의 갈기를 연상하 게 하고 마을 중심부 뒷산의 소나무숲이 형성되지 않은 부분은 사자의 배와 다리 부 분을 연상하게 한다.

마을 뒷산의 형상이 사자 형상을 하고 있는 한편 길쭉 하게 늘어선 마을은 대한민 국 지도를 꼭 닮았다.

전라. 경상도 남부의 펑퍼 짐함과 충청도. 경기도 서해 안의 잘록한 허리, 북부지방 에 이르기까지 일부러 지형 에 맞춰 집을 지어놓은 듯한 생각마저 들게 한다.

지정리란 마을 지명은 주 민들의 증언에 따르면 분명한 역사성을 지니고 있다.

본래 개심리에 속해 있었 으나 1914년 의평리와 지정 리로 분할되었으며 마을에 큰 연못이 있었기 때문에 못 지(池)자가 붙었다.

지금도 마을의 땅을 파보 면 강자갈과 모래가 출토되 는 것으로 보아 강바닥 또는 연못이 마을에 위치해 있었 던 점을 보여주고 있다.

지정리는 특히 연못에 정 자를 지어 놓으면서 ‘지정’이 란 이름을 얻었는데 이원면 으로 행정구역이 개편될 당시인 1929년까지 이남면의 소재지로 이 부근의 중심지 역할을 했다.

이남면 소재지였던 관계로 이 마을에 위치했던 면청사 는 현재의 마을창고 자리에 있었다.

소재지에 있었던 시장터도 이 마을에 있다.

마을 이범설씨 집이 옛 장 터로 인근 개심, 의평, 구미, 수묵리 등지에서 주민들이 모여들어 장을 이루었던 곳 이다.

이남면 소재지와 장터가 있었던 만큼 마을에는 제법 고가(古家)의 형태를 갖춘 집들이 아직도 많이 남아 있다.

우봉이씨와 의성김씨의 집 성촌이었던 관계로 마을 곳 곳에는 옛 선조들의 풍류와 홍취를 느낄 수 있는 흔적들 도 있다.

옛 이남면 소재지, 장터

위치한 번잡했던 마을

'세심담’(洗心潭)과 '세심 대’(洗心臺)가 바로 그것.

이는 우봉이씨 문중 가운 데 이 마을에 처음 들어와 살았던 ‘이 무' 공이 마을 앞

연못에 정자를 짓고 세심대 라 하고 연못을 세심담이라 고 한 데서 비롯되었다.

지금은 세심담과 세심대에 흙이 채이고 물길이 바뀌어 바위에 새겨진 글귀로만 그 흔적을 찾아볼 수 있는 바 옛 선조들의 유유자적한 생 활을 가늠해볼 수 있는 유적 이 되고 있다.

이 마을에 사는 50~60대 장년층의 기억 속에서도 세 심담에서 물고기를 잡았던 추억이 살아 있는 만큼 세심 담과 세심대의 흔적은 불과 수십년 전만 해도 분명히 살 아 있었던 현실이었다.

가구수 58가구, 인구수 1백8

0여명.

이 마을의 또 하나의 특징 은 인구 변동이 그리 많지 않은 점.

이농현상이 컸던 시절을 보냈음에도 마을을 빠져나간 주민들은 별로 없어 다른 마 을에 비해 빈 집이 없다는 것이 특이하다.

본래 60여호에 달했던 이 마을. 가구수가 줄었다 해도 단지 몇 가구에 불과했다.

58가구 가운데 우봉이씨는 23가구, 의성김씨는 11가구로 옛부터 집성촌을 이루었는데 주요 마을 소득원으로는 복 숭아가 주종을 이루었으나 현재는 포도가 주요 소득 이다.

포도는 40여호, 복숭아는 10여호가 재배하고 있으며 과수작목반(회장 이범채)이 형성된 한 해 평균 5억원 가 까운 과수 소득을 올린다.

포도 재배에 있어서 지정 리의 특징은 일반 품종인 캠 벨과 늦품종인 세레단이 5대 5를 이룰 정도로 늦품종 재 배가 많다는 점.

과수 재배 외에 묘목 재배 농가도 많아진 것이 현실.

마을회관 겸 경로당으로 사용되고 있는 건물의 재 축 문제와 더불어 현재 개인 적으로 지하수를 먹고 있는 현실을 마을 전체 상수도로 개설하는 문제, 마을 한 켠에 위치한 축사로 인한 축산폐 수 및 냄새공해가 주민들의 민원으로 대두되고 있다.

담배인삼공사 대전전매청 이범태 본부장이 대표적인 출향인.



<다음주는 옥천읍 성양1리>



편집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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